[인문사회]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

  • 입력 2007년 3월 2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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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림칠현 빼어난 속물들/짜오지엔민 지음·곽복선 옮김/496쪽·2만원·푸른역사

중국 위·진 시대에 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에 묻혀 거문고와 술을 즐기며 세월을 보냈다는 7인의 선비가 있었다. 완적(阮籍) 혜강(@康) 산도(山濤) 향수(向秀) 유영(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 등 죽림칠현이 그들이다.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적인 노장 사상을 신봉하며 권력이 강요하는 유가적 질서나 형식적 예교(禮敎)를 조롱하고, 그 위선을 폭로하던 이들의 삶은 고고한 지식인의 모델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 상하이대에서 고대정치사상을 연구해 온 저자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한다. 그가 내놓은 ‘죽림칠현 대해부’는 사뭇 도발적이다.

“은자가 되면 몸값이 올라가며 명사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은자는 혼자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홀로 은자로 지내면 아무런 영향력도 가질 수 없게 되어 원래의 뜻과는 달리 평생을 은둔하게 된다. 일군의 무리와 짝이 되어야 은둔을 세상에 알릴 수 있고….”

저자는 죽림칠현은 정치적 계산과 출세욕이 결합된 결사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그들이 산양(山陽)에 모인 데는 노림수가 있었다. 수도인 낙양에서 200여 리 떨어진 이곳은 속세와 단절된 풍류를 즐기면서도 자신들의 행적을 알리기 적절한 곳이었다는 것이다.

죽림칠현이 걸어간 길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혜강은 절개를 지키며 처형됐지만 완적은 이에 항변하지 못했고 향수와 산도는 벼슬길에 나서 높은 지위에 올랐다.

최악의 사례는 가장 어린 나이에 죽림칠현에 들어갔던 왕융. 그는 벼슬길에 나선 뒤 높은 지위를 위해 권세가에게 줄을 서는 데 말년을 보내다가, 후대 선비들에게서 죽림칠현에서 제명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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