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살며 붓 가는 대로 그려요”… 오용길 교수 개인전

  • 입력 2007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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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길 씨가 선보이는 ‘봄의 기운’. 한지에 수묵담채로 그린 작품으로 화사한 봄의 기운이 화면 전체에 가득하다. 사진 제공 청작화랑
오용길 씨가 선보이는 ‘봄의 기운’. 한지에 수묵담채로 그린 작품으로 화사한 봄의 기운이 화면 전체에 가득하다. 사진 제공 청작화랑
“붓 가는 대로 그렸습니다. 수필처럼. 운필의 흐름에 손을 맡겨 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처럼 붓과 손이 한몸이 될까? 한국화가 오용길(61·이화여대 예술대학장·사진) 교수의 답은 간명하다.

“오랜 수련뿐이지요. 필(筆)이 무르익으려면….”

한국 산수의 대표 작가인 그는 23일∼4월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02-549-3112)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 전시에는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린 (채색)산수화 40여 점을 선보인다. 붓의 여유로움만큼이나 봄의 감흥이 그윽하게 밀려오는 그림들이다. 이 계절의 기운이 화폭에 고스란히 들어앉았다.

전시작들은 봄과 가을 풍경을 주제로 했다. 두 계절의 풍경이 채색하기에 좋아서 선택했다고 한다. 전시작 중 ‘봄의 기운-쌍계사 가는 길’ ‘봄의 기운-소쇄원’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마음속에 있는 풍경이다. 두 작품도 실경에 가까우나 일부는 작가의 상상을 가미했다.

그는 “보고 겪지 않은 것을 그리지는 못하지만 산수를 오랫동안 그려 왔기 때문에 마음속에 새겨 둔 풍경이 가득하다”며 “소쇄원(담장)도 실제 그대로 화면에 넣다 보니 재미가 없어 소나무를 그려 넣었다”고 말했다.

그 마음속 풍경을 밖으로 드러내는 데 작가의 역량이 있다. 미술평론가 류석우 씨는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상의 핵심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응집력, 수없는 수련 끝에 얻어낸 기예, 이런 요소들이 고도로 엮어져 나오는 게 오 교수의 역량”이라고 평했다.

전시작은 대작을 내놓았던 2005년 ‘서울전’에 비해 6∼30호 작품이 대부분이다. 오 교수는 “‘서울전’이 연구 발표의 성격인 데 비해 이번 전시는 애호가를 위한 것”이라며 “나 자신이 현실주의자이고 세속적이어서 명작에 욕심을 내지 않고 능력과 수준에 맞게 그림을 그릴 뿐”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한국 산수 외길을 걸어 왔다. 한창 그림을 배울 때 앵포르멜(표현주의적 추상예술) 등 서양의 현대미술 사조가 한국 화단에 밀려왔지만, 그는 한국화에만 매료됐다. 그는 “이상하게도 먹만 보면 감흥이 일었다. 서양화나 추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대미술이 뒤집기와 비틀기로 관객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하는 데 비하면 그의 작품은 심심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변화는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작품이 반드시 다채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변화보다 자기 작품 세계를 이뤄가는 게 더 지난하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 한국화는 마이너리티다. 젊은 작가들이 선뜻 나서지 않고 동양화를 전공한 이들이 서양화를 향해 달음박질치기도 한다. 오 교수는 그런 현실에 대해서도 “세상 일이 억지로 되는 게 아니고, 언젠가는 한국화를 찾을 때가 다시 올 것”이라며 지(紙) 필(筆) 묵(墨)의 정신을 살리면 우리 회화의 정체성은 튼실하게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뜻밖에도 자식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을 반긴다고 했다. 예술의 세계는 ‘모 아니면 도’여서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 현실주의자라는 그의 말 그대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편안한 것일까?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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