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이처럼 붓과 손이 한몸이 될까? 한국화가 오용길(61·이화여대 예술대학장·사진) 교수의 답은 간명하다.
“오랜 수련뿐이지요. 필(筆)이 무르익으려면….”
한국 산수의 대표 작가인 그는 23일∼4월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02-549-3112)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 전시에는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그린 (채색)산수화 40여 점을 선보인다. 붓의 여유로움만큼이나 봄의 감흥이 그윽하게 밀려오는 그림들이다. 이 계절의 기운이 화폭에 고스란히 들어앉았다.
전시작들은 봄과 가을 풍경을 주제로 했다. 두 계절의 풍경이 채색하기에 좋아서 선택했다고 한다. 전시작 중 ‘봄의 기운-쌍계사 가는 길’ ‘봄의 기운-소쇄원’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마음속에 있는 풍경이다. 두 작품도 실경에 가까우나 일부는 작가의 상상을 가미했다.
그 마음속 풍경을 밖으로 드러내는 데 작가의 역량이 있다. 미술평론가 류석우 씨는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와 대상의 핵심을 표현해 낼 수 있는 응집력, 수없는 수련 끝에 얻어낸 기예, 이런 요소들이 고도로 엮어져 나오는 게 오 교수의 역량”이라고 평했다.
전시작은 대작을 내놓았던 2005년 ‘서울전’에 비해 6∼30호 작품이 대부분이다. 오 교수는 “‘서울전’이 연구 발표의 성격인 데 비해 이번 전시는 애호가를 위한 것”이라며 “나 자신이 현실주의자이고 세속적이어서 명작에 욕심을 내지 않고 능력과 수준에 맞게 그림을 그릴 뿐”이라고 말했다.
오 교수는 한국 산수 외길을 걸어 왔다. 한창 그림을 배울 때 앵포르멜(표현주의적 추상예술) 등 서양의 현대미술 사조가 한국 화단에 밀려왔지만, 그는 한국화에만 매료됐다. 그는 “이상하게도 먹만 보면 감흥이 일었다. 서양화나 추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현대미술이 뒤집기와 비틀기로 관객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하는 데 비하면 그의 작품은 심심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변화는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작품이 반드시 다채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변화보다 자기 작품 세계를 이뤄가는 게 더 지난하다”고 말했다.
미술계에서 한국화는 마이너리티다. 젊은 작가들이 선뜻 나서지 않고 동양화를 전공한 이들이 서양화를 향해 달음박질치기도 한다. 오 교수는 그런 현실에 대해서도 “세상 일이 억지로 되는 게 아니고, 언젠가는 한국화를 찾을 때가 다시 올 것”이라며 지(紙) 필(筆) 묵(墨)의 정신을 살리면 우리 회화의 정체성은 튼실하게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뜻밖에도 자식들이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을 반긴다고 했다. 예술의 세계는 ‘모 아니면 도’여서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는 것. 현실주의자라는 그의 말 그대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이 편안한 것일까?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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