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잘사는 게 최고의 복수

  • 입력 2007년 3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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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일본인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것이 1998년이었다. 호주에서 배낭여행 중인 한 대학생과 장거리 버스에 동승했다. 동양인이라 반가웠지만 그가 꺼내 든 일본 책에 거부감이 일었다. 일본 하면 수탈과 식민의 역사밖에 배운 게 없었으니 ‘일본은 악’이라는 당시 내 생각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대뜸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관심 없는데요’였다. 그때의 허탈함이라니. 증오는 피해자의 것이고 무관심은 가해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제국과 식민지라는 상이한 역사 체험은 생각을 이렇게 갈라놓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 후 일본을 가 보고 일본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한국에 무덤덤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한류(韓流) 이후였다.

한국 배우 이름들을 줄줄이 꿰고 너도나도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 했다. 한국이 좋다는 그들이 반갑긴 했지만 나는 일본이 좋다고 말할 용기가 있는가 되짚어졌다. ‘선(善)한 일본’은 내 안에 자리한 일종의 금기였다.

그런데 이번엔 일류(日流)다.

2월이라는 여행 비수기에 일본 도시 사람들도 잘 가지 않는다는 촌구석을 돌아다닐 기회가 있었는데 곳곳에서 한국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한결같이 일본의 음식, 숙박, 물건들이 질과 서비스가 우수하면서도 심지어 싸기까지 하다고 칭찬했다. ‘일본이 좋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들에게 오래전 내가 가졌던 죄의식은 없었다.

여행길에서 만난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친절하고 따뜻했다. 특히 사소한 데까지 남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여행자인 나는 종종 감동받았다.

그러나 귀국길에 집어 든 한국 신문은 ‘일본군위안부는 없었다’는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을 전하고 있었다. 선한 일본인들의 얼굴과 정치인들의 발언이 겹쳐졌다.

일본을 체험하고 알아 갈수록 정치와 일상이 갈라놓는 단절의 폭이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번 일본군위안부 문제에서부터 얼마 전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치인들은 값싼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를 대중에게 파는 비굴함을 보인다.

일본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악인들로 비난받아 왔다고 느끼겠지만 과거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는 자신감을 지니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복거일 ‘조심스러운 낙관’)

어느 때보다 민간 교류가 활발해진 요즘이기에 이런 일본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더 불편하다. 일본군위안부 동원에 정부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그들의 논리를 들으면서 차제에 우리도 그야말로 ‘정밀한 일본관’을 가질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우리 역시 논리와 증거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해지는 게 필요하다. 일제강점기를 수탈과 억압의 앵글만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시각에서 다양하게 바라보는 일은 그 시작이다.

뭐니 뭐니 해도 잘사는 게 최고다. 따지고 보면, 내가 만난 ‘친절한 일본인’들이란 자기네들 물건을 사 주고 관광을 하는 소비자에 대한 친절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여튼 나는 그들의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며 복거일 씨 말대로 “잘사는 것보다 더 좋은 복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문명 교육생활부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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