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문인들의 방송목소리 작품 느낌 그대로네

  • 입력 2007년 3월 10일 03시 01분


코멘트
‘그렇게 흘러간다. 나지막이 흥얼거리며, 때로는 큰 소리로 부르며, 귓가에 머무는 선율을, 혀끝에 맴도는 가사를 타고 간다. 가다가 머물고, 머물다가 간다.’

소설가 한강(37) 씨의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의 첫 부분이다. 이 책에는 작가 자신의 삶에 스민 노래와 그에 얽힌 기억이 담겨 있다.

부를 때마다 한 해가 다르게 늙으시는 아버지 얼굴이 떠오르던 ‘황성옛터’, 몸에 끌처럼 강렬하게 새겨진 비틀스의 ‘Let it Be’, 비장해지기보다는 어쩐지 애틋해지는 들국화의 ‘행진’…. ‘자분자분’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한 씨의 글은 조용하고 찬찬하다.

책에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음반이 딸렸다.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 10곡이 실렸다. 흥미롭게도, 한 씨의 목소리는 자신의 글과 닮았다.

그는 산문 제목처럼 가만가만 노래를 부르는데, 자분자분하면서도 속내가 단단한 한 씨의 글귀가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방에 가만히 앉아서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들려오는 작가의 목소리가 있다. 하나의 감각인 시각만을 동원해 작품을 읽듯, 청각만을 동원해 작가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글과 소리가 너무나 닮았음을 알게 된다.

CD 플레이어에 올려놓으면 들리는 한강 씨의 목소리가 그렇다. 그 한강 씨의 책에 ‘글밖에 모른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이 작가는 사실은 소리를 적는다’는 멋진 표사를 쓴 시인 성기완(40) 씨의 음성도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다.

성 씨는 EBS FM(104.5MHz·매일 낮 12시)에서 ‘세계음악기행’을 진행한다.

가수(인디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리더)여서인지 성 씨는 매우 잘 다듬어진 목소리를 갖고 있다. 이 작가의 조근조근하면서도 은근히 눙치는 진행에 열광하는 마니아들과, 마니아풍의 전위적인 성 씨의 시작(詩作)은 잇닿아 있다.

성 씨처럼 ‘문인 방송인’이지만 소설가 김영하(39) 씨의 목소리는 좀 다르다. 김 씨는 KBS1 라디오(97.3MHz·매일 밤 10시 10분)에서 ‘문화 포커스’를 맡았다.

문단에서도 소문난 ‘젊은 구라’답게 김 씨의 진행은 명랑하고 화려하다. 살짝 수다스럽기도 하다. 김영하 씨 소설 하면 ‘발랄’ ‘경쾌’ 같은 단어를 떠올리는데, 작가의 목소리에도 딱 들어맞는 단어들이다.

인터넷문학라디오방송 ‘문장의 소리’(radio.munjang.or.kr)에서는 작가의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이문재 한강 김선우 씨 등 진행자들이 만난 작가 수십 명의 대화가 담긴 지난 방송이 모두 올라와 있다. 얼핏 뭉툭하게 들리는,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다감함이 새어 나오는 이문재(48) 시인의 목소리, 또랑또랑하고 열정적인 김선우(37) 시인의 목소리(그들의 시도 그렇다!), 그리고 그들과 속 깊은 얘기를 나눈 많은 동료 문인들의 목소리….

잠시 휴지기였던 이 방송은 12일부터 소설가 이기호(36) 씨가 진행을 맡는다.

이기호 씨의 방송용 목소리는 어떨까? 초대 손님으로 일찌감치 함께 녹음한 동료 문인의 말에 따르면 “이 씨도 작품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기호 씨의 소설은 마지못한 듯 운을 뗐다가도 결국엔 할 말 다하는, 재치 있게 의뭉스러운 스타일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