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중 역사전쟁 키워드…‘고조선 고구려사 연구’

  • 입력 200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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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고구려사 연구/조법종 지음/574쪽·3만 원·신서원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동이(東夷)족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동이족의 역사를 모두 우리 역사의 확장된 지평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전국시대 이전 중국에 흡수된 산둥(山東)반도 일대의 동이와 한대 이후로도 독자성을 유지한 랴오둥(遼東)반도,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의 동이를 구별하는 것이다.

조법종(한국고대사) 우석대 교수가 펴낸 이 책은 바로 이런 동이관의 차이가 동북공정을 둘러싸고 어떤 역설적 관계에 놓였는가를 보여 준다.

동이는 이미 그 표현에서 드러나듯 철저히 중국 중심적 세계관의 산물이다. 중국의 동쪽에 있는 종족을 뜻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비문이나 삼국유사의 기록을 찾아보면 고구려나 신라는 서로를 동이라 부르면서도 스스로는 동이와 차별적 존재로 인식했다. 이는 중국과 별도로 천하를 인식하면서 자신의 복속세력에 대한 통칭 내지 폄훼하는 보통명사로 동이를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동이가 우리민족의 통칭이 된 것은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시대에 들어서다. 순임금이 동이출신이라는 맹자 이래의 인식과 기자조선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우리민족의 범칭으로 굳어지면서 은(상)나라까지 동이족의 국가로 간주하는 재야사학의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중국사에서 중국의 영토가 계속 확장되면서 그 동쪽에 위치한 동이의 범주도 계속 바뀌어 왔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후한서’ 이래 산동동이와 요동동이를 동일하게 간주해 왔다. 그러다 황하문화의 원류라는 앙소-용산문화보다 앞선 홍산-하가점하층 문화가 랴오허(遼河)유역에서 발굴되자 동이가 중국민족 형성의 양대 축이라는 요하문명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기존 동이관과 결부돼 산동동이뿐 아니라 그 연장선에 있는 요동동이까지 중국사로 포괄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반대로 한국에선 동이와 우리민족을 구별해 오다가 중화사상에 젖은 조선시대 이래 이를 동일시하는 인식전환을 겪으면서 역설적으로 하-은-주로 이어지는 중국사의 전통까지 한국 고대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결국 산동동이와 요동동이의 관계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한중 역사의 관건이 되는 셈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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