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함께 문화산책]테크노전사 이정현…세상을 돌린 나미

  • 입력 2007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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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요새는 댄스뮤직이 재미가 없어졌어.”

며칠 전 음악계 인사 몇몇이 모였습니다. 한 평론가는 “댄스뮤직이 섹시함 아니면 근육질로 유형화하고 있다”고 푸념했습니다.

지난달 20일 세상을 떠난 가수 이금희 씨 얘기도 나왔습니다. 고인은 1960년대 한국 최초의 댄스뮤직 ‘키다리 미스터 김’으로 인기를 얻었죠. 당시 “망측하다” “어디 감히 엉덩이를 흔드느냐”는 비난도 받았지만 대중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만은 분명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듀스’의 댄스뮤직은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했어.”

“가장 충격적인 댄스뮤직은 무엇이었을까?”

그 자리에서 세 장의 댄스음반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적어도 이 음반에는 ‘댄스’ 못지않게 ‘음악’이 녹아 있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죠. 잠시, 한 시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댄스음악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적당히 몸을 흔들면서.

○ ‘빙글빙글’ 나미 ‘골든 앨범’(1984년)

짧은 단발머리에 펑키한 의상, 허스키한 목소리 등 가수 나미는 트로트와 포크음악 일색이던 1980년대 초 뿌리를 알 수 없는 음악 ‘빙글빙글’을 들고 나왔다.

당시 뉴웨이브 사운드의 도입으로 평가받았던 이 곡은 바로 ‘뿅뿅’거리는 효과음과 기계음이 핵심. 마치 빙글빙글 돌다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마돈나, 신디 로퍼 등의 음악에 빠진 팝 팬들도 “아니 이런 음악이 우리나라에…”라고 놀랄 정도였다. 여기에 흐느적거리는 그녀의 ‘빙글빙글’ 춤 역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을 꾀했다. 팝에 가까웠던 그녀의 노래들은 ‘유혹하지 말아요’, ‘사과 하나’, ‘보이네’ 등으로 이어지며 이후 댄스뮤직의 근간을 이루었다.

○ 블랙뮤직의 결정판… 듀스 3집 ‘포스 듀스’(1995년)

힙합듀오 ‘듀스’는 분명 힙합 펑크 등 흑인음악을 들고 나왔지만 당시 음악계가 이를 받아들일 만큼 깨어 있지 않았기에 ‘댄스 그룹’으로 단순 분류됐다. 하지만 훗날 ‘듀스’는 댄스뮤직, 힙합음악 역사 모두에 등장하니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 아닐까.

‘포스 듀스’는 해체 전 마지막 앨범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모든 역량을 쏟은 앨범이다. ‘나를 돌아봐’, ‘우리는’, ‘약한 남자’ 등 가벼웠던 과거 히트곡과 달리 무게감을 자랑했다. ‘굴레를 벗어나’ 같은 ‘명령법’ 펑크는 ‘듀스’의 장기였고 색소폰과 조화를 이루는 ‘상처’ 같은 곡들은 ‘된장 힙합’의 면모를 보여 주었다. 특히 ‘재즈 힙합’을 시도한 ‘반추’ 같은 곡들에서 실험성마저 느껴진다.

○ 카리스마 테크노… 이정현 1집 ‘렛츠 고 투 마이 스타’(1999년)

광기 어린 이정현의 카리스마가 발휘된 작품. 세기말 테크노 열풍과 더불어 발매된 이 음반은 이른바 ‘동양 테크노’를 표방했다. 음악부터 비녀, 새끼손가락 마이크, 부채 등 패션 아이템까지 유행시키는 등 완벽한 콘셉트 앨범으로 꼽힌다. 3년 전 영화 ‘꽃잎’에서 보여 준 신들린 연기 못지않게 그녀는 댄스음반에서 발휘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모두 쏟았다. ‘와’, ‘바꿔’ 같은 댄스를 비롯해 ‘GX339-4’ 등 몽환적인 테크노들은 이정현의 ‘맞춤복’ 같은 느낌이었다. 데뷔 음반임에도 57만 장이나 팔리는 인기를 얻었다. 1집의 잔상이 너무 컸던 탓일까.

그녀는 아직까지 1집의 카리스마를 넘지 못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 하나. 래퍼 싸이와 조PD가 함께 만든 12번 트랙 ‘아이 러브 X’에서 지금은 거물이 된 이들의 파릇한 시절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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