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대한항공 창립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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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별도의 전용기는 그만두고라도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 한번 하고 싶은 게 소망이오.”

1968년 여름.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을 청와대로 부른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주위 사람들을 물리친 뒤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국영기업체인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어디 그뿐이오. 월남에서 휴가를 나오는 우리 장병들이 외국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장병들의 사기도 문제려니와 귀중한 외화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소.”

조 회장은 후일 자서전 ‘내가 걸어온 길’에서 “국가의 원수(元首)인 대통령께서 국가의 체면까지 거론하며 그렇게 요청하는데 사업가로서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국내 최대의 민영 항공사인 대한항공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항공공사는 정부의 ‘골칫덩이’였다. 1962년 설립된 항공공사는 잦은 기체 고장 등으로 결항을 밥 먹듯이 해 공신력이 크게 실추됐다. 매년 적자가 누적된 탓에 금융권에 진 빚이 당시 돈으로 수십억 원이었다.

비행기 보유 규모는 동남아 11개국 항공사 가운데 꼴찌 수준. 8대의 비행기 전체 좌석수를 합해도 400석이 채 되질 않았고 그나마 DC-9 제트기 한 대를 제외하곤 수명이 다한 프로펠러기가 전부였다.

정부는 민간 기업인에게 이 회사를 맡겨 발전시키려 했으나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정신이 나가지 않은 바에야 이런 회사를 인수할 리가 없었다.

결국 대통령이 나서 당시 월남에서 수송사업으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인 한진상사에 떠맡긴 것이다.

조 회장의 인수 결정에 일부 중역은 “우리가 월남에서 고생하며 모은 돈을 밑 빠진 독에 쏟아 붓는 격”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조 회장은 “밑지더라도 국익을 위해 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며 “육해공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룬 수송 기업의 구축은 나의 이상”이라고 일축했다.

부실투성이인 항공공사를 인수해 1969년 3월 1일 창립한 대한항공은 과감한 투자를 하며 민영화 38주년인 2007년 현재 122대의 비행기로 세계 36개국 109개 도시에 취항하여 국제 화물수송 실적 1위와 여객수송 17위의 거대 항공사로 성장했다.

만약 항공공사를 민간기업에 넘기지 않고 정부가 계속 운영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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