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원의 펄프픽션]‘마지막 경비구역’

  • 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미모의 법의관 ‘스타페카’의 열한 번째 시리즈 ‘마지막 경비구역’(랜덤하우스)이 나왔다. 스타페카 시리즈는 1990년에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했으며, 에드거상, 크리시상 등 5개의 유명 추리소설상을 석권했다. 이후 작가 퍼트리샤 콘웰은 초판만 150만 부를 찍는 거물급 작가로 성장했다.

최근 범죄소설은 ‘범인은 바로 너!’라는 식의 반전형보다는, 범행의 동기와 방법을 역추적하는 과정추론형을 지향한다. C.S.I 등 범죄수사 드라마들 덕분에 프로파일링, 유전자(DNA) 감식 등의 전문 용어는 물론, 쿰쿰한 부검실의 풍경이 더는 국내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스타페카 시리즈는 C.S.I 시리즈의 벤치마킹 대상이기도 하다. 실제로 콘웰은 1984년부터 버지니아 법의국에서 컴퓨터 분석관으로 5년간 일하면서 600여 회에 달하는 부검에 참여한 바 있으며, 이때의 경험이 스타페카 시리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스타페카가 주로 맡는 사건은 희생자가 여성인 연쇄살인사건이다. 여성 법의관으로서, 스타페카의 시선은 객관적인 관찰자를 넘어서서 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근본적인 사회적 원인까지 꿰뚫는다. ‘마지막 경비구역’에서도 10억 명 가운데 한 명꼴로 걸린다는 선천성 다모증을 앓고 있는 일명 ‘늑대 인간’의 여성 살해 사건을 맡고 있다. 희생자들 중에는 스타페카와 앙숙이자 부패 경찰인 브레이도 포함되어 있다. 어처구니없게도 스타페카의 집에서 브레이를 살해한 망치가 발견되면서, 법의국장인 스타페카가 브레이의 살인범으로 기소되고 만다.

스타페카 시리즈의 또 하나의 묘미는 ‘스타페카와 그의 친구들’이 세월과 함께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에 있다. 시리즈 첫 권인 ‘법의관’ 때만 하더라도 갓 부임한 신출내기였던 스타페카가 어느새 정계 거물급 인사로 뛰어올랐고, 열 살이었던 스타페카의 조카 루시는 백만장자 정부 요원으로 성장했다. 마리노 반장은 여전히 거칠지만 믿음직한 스타페카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스타페카의 연인이자 미국연방수사국(FBI) 요원인 벤튼은 그만 1년 전에 살해당했다.

‘마지막 경비구역’이란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일종의 사설 경찰기구의 상호이다. 비정한 뉴욕의 뒷골목에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면, 마지막 경비구역을 찾아가라’는 말이 파다하다. 어쩌다 스타페카의 조카 루시가 ‘마지막 경비구역’을 결성하게 됐는지, 첫 시리즈만 해도 밋밋했던 스타페카와 벤튼의 관계가 어떻게 연인으로 발전했는지, 늑대인간이 어떻게 체포됐는지 궁금하다면 스타페카 전편을 들춰보도록 하자. 거슬러 읽어도 과정을 추론하는 묘미가 있다.

한혜원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우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