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평했던 아버지, 이젠 든든한 후원자”

  • 입력 2007년 2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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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황동규 시인(왼쪽)과 딸 시내 씨. 처음엔 사진 찍기를 쑥스러워하던 부녀는 기자의 간곡한 요청에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이훈구 기자
아버지 황동규 시인(왼쪽)과 딸 시내 씨. 처음엔 사진 찍기를 쑥스러워하던 부녀는 기자의 간곡한 요청에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이훈구 기자
“이게 시냐?”

11세 소녀의 가슴에 충격을 안겨준 한마디. 남몰래 틈틈이 써오던 시를 수줍게 내보인 딸에게 내린 아버지의 냉혹한 평가였다. 그것도 유명 시인인 아버지의 입에서 떨어진…. 소녀는 성장해 26년 뒤 첫 산문집 ‘황금물고기’(휴먼 앤 북스)를 냈다. 그가 바로 황동규 시인의 딸 시내(37) 씨. 19일 오후 서울 동작구 사당동 황 시인의 자택에서 아버지와 딸을 만났다.

할아버지(황순원)나 아버지의 작품을 많이 읽었느냐는 질문에 시내 씨는 “솔직히 많이 안 읽어 봤다”며 웃었다. 할아버지는 ‘소나기’ ‘별’ 등 한국 문학사에 빛나는 작품을 남긴 작가. 그러니 황순원 동규 시내 씨로 3대째 문필의 길을 이어받은 셈이다.

선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문학을 접했을 듯하지만 시내 씨의 속사정은 달랐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고 자주 뵙지도 못했어요. 아버지도 글 읽는 것을 그리 권하신 편이 아니고, 저 역시 음악을 전공해서 문학과 그다지 친하지 않았죠.”

여기에 황 시인이 변명(?)을 하고 나섰다.

“딸애까지 문학을 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문학은 경험이 중요한데 나와 경험이 공유되니까 작품을 쓰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도 문학을 하며 그런 어려움을 겪어서 아버지와 저로 족하다고 생각했죠.”

이런 바람 때문인지 시내 씨는 음악과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1989년 서울대 작곡과에 입학한 그는 음악도의 길로 나섰고 이후 미국 테네시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며 현지 한글 신문에 음악 칼럼을 쓰고 있다.

시내 씨의 산문집은 그 칼럼들의 모음이다. 오랫동안 글쓰기와 거리가 먼 줄 알았는데 우연히 신문에 연재한 음악 칼럼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책으로 내자는 권유를 받고, 26년 전의 핀잔을 무릅쓰고 아버지에게 10여 편을 보내 ‘감수’를 부탁했더니 반응이 의외였다. “이거 책으로 내야겠다.”

책에는 아버지와 관련된 1970, 80년대 유년 시절의 기억과 할아버지에 대한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시내 씨의 독일 유학 시절 체험담과 음악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보는 딸의 산문 작품은 어떨까?

“시내가 원래 산문을 잘 써요. 나보다 낫죠. 미술을 공부해서 그런지 글이 회화적이고 구체적인 데가 있고…. 아무튼 독특한 감수성이에요.”

‘황금물고기’는 책에 담은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파울 클레의 그림 ‘황금물고기’를 좋아하는 시내 씨가 여러 차례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않은 상황 때문에 끝내 그림을 볼 수 없었던 안타까움을 담았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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