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과 새를 사목하는 ‘생명 신부님’… 강원 평창 김태원 신부

  • 입력 2007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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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아랫집에 사는 진복이(5)가 못내 안쓰러운 모양이다. 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에서 금당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비포장도로로 이어지는 길을 30여 분 차로 달려가면 만나는 강원 평창군의 심심산골. 김태원(55) 신부가 홀로 사는 촌가(村家)의 아랫집 이웃인 진복이는 요즘 가끔 계곡이 울려대도록 고함을 질러댄다.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와 살고 있는 진복이는 마을의 유일한 친구였던 보길이(6·여)가 얼마 전 떠난 후 풀이 죽었다. 인적조차 드문 산골에서 진복이는 심한 외로움을 앓고 있다.》

“그땐 계곡이 살아 있었어. 진복이가 ‘보길아, 내려와라’ 하고 소리를 지르면 보길이가 ‘엄마가 못 가게 해’라고 답변을 하지. 두 녀석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살맛이 났지.”

아빠가 갑자기 죽고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보길이는 생활이 어려워 면민들이 만든 ‘사랑의 집’으로 이사했다. 잘생기고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진복이는 차량 소리만 들리면 뛰쳐나와 누구인지를 확인하곤 했다. “너, 보길이 보고 싶어서 소리 지르지?” 신부님이 은근히 찌르자 진복이는 “어떻게 아셨어요”라며 풀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다.

김 신부가 평창군 대화면 개수리에 황토벽돌집을 짓고 들어온 것은 2005년. 강원 원주시 학성동 성당에서 사목을 하다 ‘국내 연수’차 산골에 터를 잡았다. “신부님이 웬 산입니까”라고 묻자 “사막이 없기 때문에 산에 왔어요”라는 다소 엉뚱한 답이 돌아온다. “프랑스 유학 시절 사하라 사막을 서너 차례 갔지. 사막만큼 수행하기 좋은 장소가 없어요. 모래만 있는 사막에 뚝 떨어지면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김 신부는 화가다. 나무, 쇠 등에 옻을 칠한 뒤 안료가루를 그 위에 뿌리는 전통화의 일종인 ‘옻칠화’를 계승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신학과 그림(유화)을 공부했지만 무형문화재 12호인 칠장 예능보유자 김상수 선생을 사사한 뒤 전공을 바꿨다.

“옻칠화는 내구성이 뛰어나 1000∼1500년을 보존할 수 있습니다. 안료가루를 뿌리는 건칠(乾漆) 기법을 쓰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이 더욱 맑고 투명해지죠.”

김 신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전시회를 했고, 올해 11월 7일에도 전시회가 예정돼 있다. 그림이 좋기도 하지만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그는 전시 수익금 전액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썼다.

김 신부의 또 다른 직업은 농부다. 비료나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 인분과 톱밥을 섞어 퇴비를 만들어 쓰는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밖에 나가 볼일을 보려거든 우리 집에서 해.” 김 신부의 인분 사랑은 대단하다. 지난해 1800여 평의 밭에 더덕, 가시오갈피, 허깨나무, 고추, 옥수수 등을 심었다. “옥수수의 절반을 멧돼지, 고라니에게 진상했어. 어떡하겠어. 동물들이 주인이고 나는 객(客)인걸.”

그는 생명주의자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새, 들짐승 등 온갖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한다. “여기서 살아 봐요. 새들과 나무와 놀다 보면 대화가 돼요.” 언젠가는 잠을 자다 머리맡에 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 깜짝 놀라 깬 적이 있다. “훈련을 시킨 뒤 풀어 줬는데 그 녀석이 나만 보면 피하더라고.” 김 신부가 해맑게 웃는다.

TV도, 시계도, 컴퓨터도, 달력도, 수도도 없는…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진 김 신부. 그는 “진복이에게 과자 한 상자 안겨 볼까…. 도무지 이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라고 고백한다.

우뚝 솟은 뒷산을 배경으로 너와를 얹어 지은 황토집을 뒤로하고 김 신부가 배웅을 나오다 잠시 멈춰 선다. “아참, 인분 주고 와야지.” 소변통 앞에 돌아선 김 신부. 그가 사는 곳에는 사람과 자연의 경계나 구분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평창=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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