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9분


코멘트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만권 지음/344쪽·1만3000원·개마고원

철학은 무엇인가. ‘생각하기’다. ‘생각한다’는 것은 곧 자기 내면과의 대화다. 저자는 17가지 소주제로 구성된 이 책에서 자아와 타인,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를 활동연대가 다른 복수의 철학자들을 통해 통시적으로 교직한다. 때로는 대립적으로, 때로는 보완적으로….

소크라테스와 해나 아렌트가 만나고, 플라톤과 푸코가 진리와 권력의 관계를 논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를 “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진리를 내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로 해석한 아렌트의 통찰은 알량한 지식으로 진리를 독점하려 드는 유사(類似) 지식인들의 천박성에 대한 일갈이다.

다른 사람의 동의를 사적 소유권의 원천으로 봤던 칸트의 ‘집단의지 동의론’과 노동의 개입을 통해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로크와 노직의 ‘노동가치론’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본질인 소유권의 기원에 관한 것이다.

도덕으로부터 정치를 해방시킨 마키아벨리가 갈가리 찢긴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간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 내 집단의식에 주목했듯, 북부와 남부로 갈라진 20세기 초 이탈리아를 자본주의와 파시즘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노동자 중심에서 자본가를 껴안는 포용적 이데올로기를 구상했던 그람시와 견주는 것도 흥미롭다.

이 책의 장점은 단순히 철학자들의 ‘설(說)’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뉴욕 뉴스쿨에서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저자는 철학자들의 사회·정치사상이 어떻게 그가 살았던 사회 속에서 배태되고 동시대의 사회구조를 통해 조탁되고 있는지 그 배경에 주목한다. 그래서 어렵게만 느껴지던 철학을 요리해 입문자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밥상에 올린다.

이 책에 관통하는 저자의 의지는 하나다. 바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의 주체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식의 ‘관조적 자아’가 아니다. 자아를 분리하고 자연과 타자를 관찰과 과학의 대상으로 여겼던 데카르트식의 사고를 넘어 일상에서 끊임없이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칸트적 자아를 요구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아이히만이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하자 “생각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단죄한 아렌트의 통찰은 일상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지 않고 기계처럼 순응하며 사는 우리들에게 비수로 다가온다.

칸트의 지적처럼 우리 시대의 미성숙은 이해의 결핍이 아닌 용기의 부족에서 온다. 그렇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