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미국의 내면을 분석하다…‘살인의 해석’

  • 입력 2007년 2월 1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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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해석/드 러벤펠드 지음·박현주 옮김/56쪽·1만3000원·비채

어떤 역사에는 구멍이 빵 뚫려 있다. 가령 1909년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 우스터에 있는 클라크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렇지만 미국을 다녀온 프로이트는 “미국인은 야만인”이라며 혐오했다.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아 전기 작가들에게는 이 부분이 늘 미스터리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것 말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자 제드 러벤펠드가 착안한 것은 이 ‘구멍’이다. 그는 상상력을 발휘해 ‘아마도 프로이트가 미국에서 겪었을’ 끔찍한 사건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연쇄살인’이다.

저자가 예일대 법대 교수라는 것 때문에 소설은 미국에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젊었을 적 문학청년의 꿈을 이룬 차원이 아니다. 저자는 프린스턴대를 졸업할 때 프로이트를 학부 논문 테마로 삼았고, 줄리아드연극원에 진학해 셰익스피어를 전공했다. 그러니 소설에서 탐정으로 활약하는 프로이트와 중요한 분석기제로 등장하는 ‘셰익스피어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는 얄팍한 상상이 아니다.

뉴욕 최고급 고층빌딩에서 한 여성이 살해되고, 이어 또 다른 여성이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발견된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 산도르 페렌치와 함께 미국을 방문했을 때다. 기성 신경학자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자기 어머니를 범하고 싶어 하는 남자아이 얘기’라고 폄훼했지만, 소설의 화자인 미국의 젊은 정신분석학자 스트래섬 영거에게는 대단히 매혹적인 학문이었다.

우연히 살인사건에 개입하게 된 프로이트는 영거에게 살아남은 피해자 노라(프로이트가 ‘꼬마 한스와 도라’라는 저서에서 소개했던 환자 ‘도라’의 변형)의 정신을 분석하게 한다. 노라와 마주한 영거는 점점 그녀에게 빠져드는 한편,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욕망을 발견하게 된다.

단순하고 평범해 보이는 줄거리를 받쳐 주는 것은 탄탄한 정신분석 과정이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노라의 심리를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분석과 교차시켜 파헤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정신분석학의 두 거장이면서도 감정적으로 대립했던 프로이트와 융의 갈등 관계를 묘사하는 장면들도 흥미롭다. 작가는 사료를 토대로 소설 곳곳에 두 사람이 부딪치는 모습을 그려 놓는다. 이를테면 소설에서 벌어지는 맨해튼 호텔 방에서의 격렬한 논쟁은 실제로 그해 3월 오스트리아 빈의 프로이트 자택에서 일어난 일이다.

또 하나의 읽을거리는 20세기 초반 뉴욕이 화려하게 모습을 갖춰 가는 과정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세워지는 마천루, 높은 빌딩 숲 뒤에서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여성과 소수자들…. 번쩍이는 도시의 조명과 그 아래 드리워지는 그늘은 욕망과 증오에서 배태된 끔찍한 범죄가 필연적인 것임을 알려준다. 저자는 프로이트의 육성을 통해 풍요의 땅 미국에서 살아가기의 어두운 이면을 솔직하게 전달한다.

“이 나라는 사람들에게 최악의 것을 안겨 주고 있네. 천박한 야망이나 야만 같은 것들. 또 돈이 너무 많아. 지금 불어오는 회오리바람 같은 희열에 휩싸이면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을 걸세. 미국은…실수나 다름없네.” 원제 ‘The Interpretation of Murder’(2006년).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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