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민족과잉 韓流

  • 입력 2007년 2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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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진보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명칭에서 ‘민족’을 빼려다 회원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다. 한 관계자의 전언(傳言)이 재미있다. 외국과 사업을 같이 하려고 단체 이름을 영문으로 보냈더니 ‘민족(National)’이란 단어를 보곤 극우 단체가 아니냐며 거부반응을 보여 명칭 변경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민족을 한쪽에선 진보의 가치로, 다른 쪽에서는 극우의 가치로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가수 겸 프로듀서인 박진영(35) 씨가 세계로 뻗어 가는 우리의 문화상품에서 ‘한류(韓流)’라는 국가 라벨을 떼어 내야 한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처음엔 별 형태도 없던 한류가 왜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면서 ‘한국 만세’가 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류 속에 스며든 민족 이념의 과잉이 주변국들의 반감을 자초하고, 문화 수출을 방해한다는 얘기다.

▷1997년 중국에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로 불기 시작한 한류는 영화 음악 엔터테인먼트로 영역을 넓히면서 지금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세(勢)를 확장하고 있다. 북한에까지 ‘침투’했다고 하니 그 위력을 알 만하다. 그 여파로 은행과 기업들이 앞 다퉈 공연 지원과 드라마 제작에 돈을 투자하고 있다. 대학엔 한류 관련 학과와 심지어 박사과정까지 생겼다. 정부는 한류상품 수출에 금융지원을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섰다.

▷한류 열풍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작년 총 208편, 2451만 달러어치의 영화가 수출됐지만 전년과 비교하면 68% 감소했다. 한류의 쇠퇴는 아니지만 ‘소강 상태’라는 진단이 나온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박 씨가 말한 ‘민족 과잉’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민족이 우리에겐 귀중한 가치일지라도 다른 이들에겐 ‘배타적’으로 인식될 수 있다. 우리의 보배인 한류를 더 오래 지속시키고, 더 크게 키우려면 수용자들이 거부반응을 보일 수 있는 요소는 가능한 한 줄여야 할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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