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거탑’ 김명민 “의학용어 잠꼬대로 나올 정도로 외웠죠”

  • 입력 200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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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주연 ‘장준혁’ 역을 맡은 김명민. 그는 “선과 악, 자부심과 열등감 등 이중적 심리로 얽힌 인간의 내면을 연기하기 위해 나를 불태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MBC
MBC 드라마 ‘하얀거탑’에서 주연 ‘장준혁’ 역을 맡은 김명민. 그는 “선과 악, 자부심과 열등감 등 이중적 심리로 얽힌 인간의 내면을 연기하기 위해 나를 불태울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MBC
“여기로 오세요. 여기가 외과 진료실입니다.”

기자가 진료실로 들어가자 하얀 가운을 차려입은 의사가 앉아 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야 할 의사는 자신감 넘치는 소리로 말했다. “김명민입니다! 먼 길 오셨죠. 반갑습니다.”

○ 수술 장면 21시간 촬영할 땐 스트레스 엄청나

실제 병원이 아니다. 24일 오후 경기 이천시 MBC 메디컬 드라마 ‘하얀거탑’(연출 안판석·극본 이기원·토 일 오후 9시 40분) 세트장. 1200여 평 규모의 세트에는 수술실 2곳, 진료실 등이 배치돼 있다.

6일 시작한 이 드라마의 주연 김명민(35)도 진료실에서 만나니 진짜 의사나 다름없어 보였다. 다소 딱딱한 표정과 사무적인 손동작, 정확하고 분절되는 발음 등. 병원 권력을 둘러싼 의사들의 암투를 그린 이 드라마에서 그는 천재 외과 의사 장준혁 역을 맡았다.

―진짜 의사를 만난 줄 알았다. 환자 배를 가르는 동작 등 의사 연기가 섬세하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기술적인 측면은 쉬웠다. 명지대병원과 순천향대병원 등 외과 수술실을 계속 방문했고 비디오카메라로 찍어 집에서도 연습했다. 대본을 이해 못할 경우 전문의의 설명을 들었다. 물론 의학 용어는 한번도 말해본 적 없어 힘들다. 그냥 잠꼬대로 나올 정도로 외운다. 수술 장면을 21시간 연속 촬영한 적이 있는데 ‘사람을 죽이느냐 살리느냐’는 의사를 연기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그래서인지 실제 의사들을 만나면 ‘적나라하게 잘 표현했다’는 말을 듣는다.”

―(그동안 연기했던) 이순신 장군(KBS ‘불멸의 이순신’)과 깡패 오달건(SBS ‘불량가족’)에 비해 장준혁은 선악이 공존하는 복잡한 캐릭터다.

“나도, 장준혁도 선과 악 중 한쪽만을 택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시기해 조직적으로 발목을 붙잡고 견제하면…. 그것을 어떻게든 억누르고 위로 올라가려는 욕망이 생긴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 아닌가.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처음 장준혁을 연기할 때는 ‘좁은 병원에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렇게 하나’라고 반문했지만 극중 지나친 권력욕으로 주변의 비난을 받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웰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는 ‘하얀거탑’의 힘은 캐릭터의 다면성이다. 배역마다 여러 가지 얼굴을 갖고 있다. 그만큼 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과장 자리를 얻기 위해 부원장(김창완)에게 아부하는 장준혁은 속물근성을 보이지만 흔들리는 표정도 감추지 못한다. 시청자들은 “준혁의 표정 속에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고 말한다.

―연기를 잘한다고 평가받는다. 그 핵심이 무엇인가.

“(단호한 표정으로) 진정성이다. ‘불멸의 이순신’도 천방지축 깡패 ‘달건’도 자신만의 리얼리티가 있다. 내 연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극중) 저 사람 처지에선 저럴 수 있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 이것이 내 연기의 핵심이다.”

그는 몰입을 위해 촬영 중간에 좀처럼 메이크업을 고치지 않으며 쉴 때도 수술복을 갈아입지 않는다.

―성공에 매몰된 장준혁처럼 연기에 대한 강박관념은 스스로를 피폐하게 하지 않는가.

“맞다. 처음 배역을 맡을 때 부담이 컸다. 장준혁 때문에(웃음)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살도 많이 빠지고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 긴장감 있는 장면을 연기할 때는 가족의 얼굴도 보기 싫다. 그래도 배우라는 직업은 특혜다. 다양한 삶의 인물을 소화해 살아 숨쉬는 인물로 재창조하는 것은 도전이다.”

○ 리얼리티 살리는 ‘진정성’이 내 연기 핵심

―연기자로서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얼굴이 잘생기지도 않았고 개성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얼굴이어서 공채(SBS)로 들어갔을 때 ‘뭘 믿고 탤런트 시험 봤느냐’란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웨이터 경찰 깡패 도둑 등 안 해본 단역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만의 진정성을 찾았다. 평범함이 배우에겐 축복이다. 이제는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 그게 전부다. 진정성이 없으면 그 인물은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될 뿐이다.”

인터뷰하는 동안에도 그는 탤런트 김명민이 아니라 의사 장준혁이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서현아(23·서울대 독어교육과)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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