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3년 이승만 대통령 비공식 방일

  • 입력 200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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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에 걸쳐 우리의 주권을 침해했고 또다시 침해하려는 일본을 세계의 법정에 세우겠습니다. 난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습니다.”

“나는 대한민국 통수권자로서 이 사태에 대해 민족의 자긍심을 지켜 나가는 선택을 할 작정입니다.”

한일 간 외교 갈등을 소재로 한 영화 ‘한반도’에서 한국 대통령(안성기)은 이처럼 결연하게 외친다.

‘반일(反日) 영화냐’는 논란이 일자 감독은 ‘극일(克日) 영화’라고 했다. 일본과 대립 각을 세워 온 노무현 대통령을 극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정치사에서 대표적인 ‘반일 대통령’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6·25전쟁 중이던 1953년 1월 5일 일본을 비공식 방문했다. 그를 초청한 것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도쿄(東京)에 있는 미군정 당국이었다. 교착 상태에 빠진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중재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일 미군사령관이 어렵게 이 대통령과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일본 총리의 면담 자리를 마련했다. 두 정상은 마주 앉았지만 둘 사이의 골은 넓고 깊었다.

“한국에는 아직도 호랑이가 많다면서요.”(요시다 총리)

“이제 한국에는 호랑이가 없소.”(이 대통령)

“그럴 리가요. 옛날부터 백두산 호랑이가 유명하지 않습니까.”(요시다 총리)

“당신들 일본 사람이 다 잡아 가는 바람에 호랑이 씨가 말랐소.”(이 대통령)

“…….”(요시다 총리)

이 대통령의 반일 정책은 국내 정치용인 측면도 있지만 일본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대한 나름의 대응 논리이기도 했다.

다음 해인 1954년 8월에 발표한 ‘침략주의 일본은 증오의 대상/자유 아시아 국가는 미국의 대(對)아시아 정책을 주시’란 제목의 이 대통령 담화문을 보자.

“만일 미국이 또다시 일본 군국주의를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이 되게 만들어서 그 군대가 다른 아시아 민족들에게 총부리를 돌려 대게 한다면 진주만 공격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은 거의 틀림없는 일이다.”

이 대통령에게는 반일이 국익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지만 적지 않은 한국인이 지금도 일본의 군국주의화를 우려한다. 한국의 반일은 물론 일본 탓이 크다. 우리가 반일을 넘어서서 진정한 극일을 이룰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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