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가 ‘나’에게 미래를 훈수했더니… '언니가 간다'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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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인생을 바꾸려는 한 30대 여성의 이야기 ‘언니가 간다’. 사진 제공 시오필름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인생을 바꾸려는 한 30대 여성의 이야기 ‘언니가 간다’. 사진 제공 시오필름
디자이너 보조로 일하는 서른 살 나정주(고소영)는 12년 전 첫 남자 조하늬(이중문)에게 큰 상처를 받은 뒤 사랑을 믿지 않는다. 현재의 조하늬(김정민)가 톱 가수가 된 걸 보면 짜증이 난다. 더구나 고교 시절 자신을 좋아하던 오태훈(이범수)은 사업가로 성공해 나타난다. 운명을 저주하며 울다 잠든 어느 날 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정주에게 주어지고 정주는 열여덟 살의 자신(조안)을 만나 조하늬 대신 어린 오태훈(유건)과 연결해 주려 한다.

4일 개봉하는 ‘언니가 간다’는 1994년에 중고등학생이던 지금의 20대 중반∼30대 초반, 흔히 X세대라 불렸던 이들에게 주는 복고풍 선물 같은 영화다. ‘1990년대’가 벌써 복고의 대상이 되다니! 듀스의 ‘나를 돌아봐’ ‘여름이야기’부터 그 시절 패션 리더의 필수품이었던 게스 청바지에 무선호출기(삐삐), 하이텔 등 PC통신까지. 또 과거로 간 서른 살 나정주가 어린 오태훈에게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그 유명한 고백 방법(종이에 멋진 말을 써서 한 장씩 넘기는)을 가르치는 등 1990년대와 2000년대가 재치 있게 엮인다.

주인공이 우연히 노트북 컴퓨터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게 하는 설정은 허술하다. 굳이 과거에 다녀오는 수고를 하지 않았어도 결말은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또 지금은 세상을 떠난 엄마가 미래에서 1994년으로 돌아온 딸의 존재를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데 보고 나면 제법 기분이 괜찮다. 그 ‘과거 개조 프로젝트’라는 것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박박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가 있고 ‘그놈만 아니었으면…’ 하는 사랑의 상처도 있으니까. 인생의 아쉬운 부분에 대해 다들 해본 상상의 결과를 확인하는 재미가 있다.

처음엔 ‘첫 남자가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는 홍보 문구 때문에 불쾌했다. 그러나 정작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게 ‘남자 잘 만나야 한다’는 아닌 것 같다. 열여덟 살 정주는 남자를 바꿔야 한다며 자신의 연애에 간섭하는 서른 살 정주에게 “내 인생이잖아. 왜 남자에게 보장받아야 돼?”라고 대든다. 서른 살 정주가 그렇게 노력했지만, 결국 시간을 되돌려도 운명은 바꿀 수 없었다. ‘지금 나의 모습은 내가 선택해 온 결과’라는 메시지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인생이 꼬인 건 ‘그놈’이 아니라 ‘나’ 때문이었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다녀 온 서른 살 정주는 그걸 깨닫는다. 그리고 성숙해진다. 12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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