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보는 미래-미래학 20선]<3>디지로그

  • 입력 2007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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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기술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한 디지로그의 새 문명 현상으로 발전되고, 이 사회를 초기정보사회가 일으킨 IT 거품과 부작용이 개선된 후기정보사회로 전환시킬 것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상극적인 것이긴 하지만 이항 대립이 아니라 상호 보완으로 상생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자와 이미지의 상생,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상생, 책에서도 21세기의 화두는 역시 상생이다.”

새 천년 벽두에 필자가 한 일간지에 쓴 칼럼의 일부다. 그런데 이 칼럼을 쓰고 나서 나는 담당 기자에게서 “아날로그 책에 대한 당신의 애정은 알겠는데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 써라.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에서 누가 이길지는 자본이 이야기해 주지 않겠느냐?”는 핀잔을 들어야만 했다.

당시는 종이책은 사라지고 전자책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라는 어이없는 논리가 팽배했을 때였다. 더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MS리더’라는 전자책 단말기를 내놓으며 모바일 시장을 또다시 평정하겠다고 야심을 내보이던 때라 디지털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것이란 예견을 의심 없이 퍼뜨리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문명을 냉철하게 바라본 이가 없지 않았다. ‘디지로그’의 저자 이어령 씨는 “이항 대립 체계로 이루어진 갈등과 배제의 ‘한 손 원리’가 아닌, 시간과 공간, 자유(경제-자유 경쟁 원리)와 평등(정치-더불어 사는 평등 원리), 정신과 물질, 생명과 기계, 문명과 자연, 남성과 여성의 이질적 상극 패러다임을 ‘두 손 원리’로 극복하자”고 주장했다.

‘두 손 원리’는 상생이요, 퓨전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또한 힘을 합해 제3의 문화를 만들어 낼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날것도 아니고 익힌 것도 아닌 ‘삭힌’ 것이다. 발효식품인 김치 같은 것이다. 이제 그것에 저자는 ‘디지로그’라는 당당한 문패를 달아 주었다.

따라서 ‘디지로그’는 무엇보다 인간주의 선언으로 읽힌다. 인간은 환경 순응의 동물이 아니다. 무수한 난관이 있었지만 인류 역사상 인간은 단 한번도 기술에 종속된 적이 없다. 오히려 격동기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한 단계 진전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디지털 기술이라고 다르겠는가? 인간은 이미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전방위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저자는 비빔밥을 즐겨 먹고 젓가락을 사용하는 한국인이 감동과 행복을 나누는 관계기술(RT·Relation Technology)의 따뜻한 디지털 환경을 만드는 데 가장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젓가락이 뜻하는 바는 상호 의존성과 관계를 중시하는 배려의 정신이다.

정보기술(IT) 혁명은 완성은커녕 이제 겨우 발아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혁명이 과연 어느 방향으로 진척될지, 아니 어느 방향으로 완성해 나가야 할지 냉정하게 사고해야 한다. 그렇게 사고하려는 사람에게 ‘디지로그’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더구나 이 책은 한국인이 쓴 매우 드문, 그러면서도 수준 높은 미래 예측서가 아닌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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