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통보 받는 순간 휘청…작가길 생각하니 정신 번쩍”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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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 김휘 씨. 그는 “말할 수 없는 기쁨 뒤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면서 “부담을 뛰어넘을 수 있는 노력을 통해 인정받는 소설을 써내겠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 김휘 씨. 그는 “말할 수 없는 기쁨 뒤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면서 “부담을 뛰어넘을 수 있는 노력을 통해 인정받는 소설을 써내겠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 본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당선 김휘 씨

늘 그랬듯 도서관에서 보낸 하루였다. 책을 읽다가 깜박 졸았다. 전화가 왔다. 요즘 부쩍 많이 오는 대출광고 전화인 줄 알고 김휘(39) 씨는 조금 짜증스럽게 다시 물었다. “네?” “동아일보 신춘문예 응모하셨습니까?”

김 씨는 당선 통보를 받던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했다. 신춘문예 도전 2년째, 수년씩 준비하는 지망생들을 보면 등단은 요원한 일만 같았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던지 도서관 책을 그냥 들고 나오는 바람에 책 도둑이 될 뻔했다”며 김 씨는 웃는다.

대학원을 졸업하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와 브랜드 네이머로 일했다. 그가 지은 이름 중에는 ‘한국화장품 칼리’ ‘한국통신 프리텔’ 등 잘 알려진 상품도 있다. 몸이 안 좋아져 직장 생활을 그만둔 뒤 록 음악 웹진도 운영했고 연극 분장공부도 했다. 그러다가 2003년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선배가 오르한 파무크(올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의 소설 ‘새로운 인생’을 권했는데, 소설 구절처럼 ‘내 얼굴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그러한 강력한 힘’을 책에서 느꼈습니다. ‘새로운 인생’이라는 제목도 주문 같았어요.”

폭식하듯 책을 읽었다. 도서관에 틀어박혀 친구들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1년을 책에만 빠져 지내다가 습작을 시작한다. 말 그대로 소설 쓰기에 ‘올인’했다. 여성임이 드러나는 게 싫어 ‘김휘주’라는 본명의 마지막 자를 뺀 이름 ‘김휘’로 응모한 작품 ‘나의 플라모델’이 등단작이 됐다.

‘나의 플라모델’은 혼자 탈북한 소년이 플라모델을 파는 가게에서 일하면서 지켜본 우리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해 여름 읽은 신문기사에서 소재를 얻었다. ‘나 홀로 탈북자’ 소년이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에 그는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차가운 이면”이라고 생각했다. 탈북자들의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비참한 체험담을 접하고는 울기도 여러 번이었다. “새로운 소외계층이 된 탈북자들의 상처를,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소설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김 씨는 말한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은 예비 작가들이 꼭 도전하고 싶어 하는 ‘꿈의 관문’이다. 이문열 송우혜 이창동 최성각 채희문 한정희 은희경 전경린 씨 등 작가들이 동아 신춘문예 중편 당선자로 등단했다. 지난해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박주영 씨,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김언수 씨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 부문 출신이다.

김휘 씨는 “큰 작가들이 배출된 관문을 통과하게 돼 영광”이라며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까지는 습작생들과 경쟁했다면 이제부터는 중견 작가들과 겨루어야 한다”며 “여전히 소설에 ‘올인’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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