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신춘문예 희곡부문 화제의 공동 당선자

  • 입력 2007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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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희곡 부문)인 홍지현 씨(왼쪽)와 주혁준 씨. 홍 씨는 올해 19세이고, 주 씨는 극단 목화레퍼토리컴퍼니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배우다. 신원건 기자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자(희곡 부문)인 홍지현 씨(왼쪽)와 주혁준 씨. 홍 씨는 올해 19세이고, 주 씨는 극단 목화레퍼토리컴퍼니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배우다. 신원건 기자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는 이례적으로 희곡부문에서 공동 당선자를 냈다. 공동 당선도 화제지만 당선자들의 이력과 나이도 놀랍다. 한 명은 응모 당시 18세였고, 다른 한 명은 국내 정상의 극단인 목화레퍼토리컴퍼니의 현역 배우였다.》

○ ‘변기’의 홍지현

‘변기’라는, 제목부터 튀는 이 작품은 처음부터 심사위원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았다. 신(神)을 변기로 설정한 발상이 기발했고, 단막(單幕)의 맛을 잘 살린 재기발랄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연출가 한태숙 김태웅)은 망설였다. ‘만 18세’라고 밝힌 어린 나이 탓에 직접 썼는지 반신반의하다 최종 결정을 앞두고 전화를 걸어 확인 질문을 던진 끝에 수상자로 선정했다.

“세상의 권위에 대한 복종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연극무대에서는 강한 상징이 필요하잖아요. 제일 높은 것과 제일 낮은 것이 만나면 재밌겠다는 생각에 신과 변기를 등장시켰죠.”

동아신춘문예 최연소 당선자인 홍지현(19) 씨는 현재 성균관대 약대 1학년 휴학 중이다. “이강백 선생님의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특별한 글공부 대신 희곡을 열심히 읽었다고 했다. 휴학하면서 6개월간 세 편의 습작을 ‘그냥 써 봤다’. 그중 ‘변기’는 불과 한 달 만에 완성했다. “부모님께 당선 소식을 알려 드렸더니 처음엔 안 믿으시더라”며 웃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또래와는 조금 다르다. 경기 여주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뒤 개인 사정으로 고교 진학 대신 검정고시를 봤다. 글쓰기가 좋았지만 “4년만 참고 약사 자격증을 따 놓고 나서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어른들의 권유로 약대에 들어갔다.

‘변기’에는 이런 과정에서 품게 된 그의 생각이 녹아 있는 듯하다. ‘변기’에서 성실한 젊은 수도승은 변기의 모습을 한 신에 대해 회의하지만 나중에는 두려움 때문에 변기에 복종한다.

“‘어릴(?) 때’는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세상이 힘들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어른 말씀이 아직은 다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세상살이의 두려움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변기’처럼 우리가 믿는 건 허상이고 정말 옳고 아름다운 건 따로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희곡뿐만 아니라 소설, 드라마, 시나리오 등 다양한 장르에 관심이 있다는 그는 신춘문예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수능시험도 다시 봤다. 서울대 사회대와 연세대 경영대에 지원해 놓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신춘문예 당선으로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그는 “글쓰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예대 극작과 지망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 ‘허수아비’의 주혁준

“오태석 희곡을 최소 열 번 이상 필사(筆寫)해 본 게 틀림없다.”

“습작도 많이 해 본 솜씨고 실제 연극 무대에 아주 능숙한 사람이다.”

최종심에서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허수아비’를 놓고 이렇게 추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허수아비’로 희곡 부문에 당선된 주혁준(37) 씨는 연출가 오태석 씨의 제자(서울예대 극작과)이자 오 씨가 이끄는 목화레퍼토리컴퍼니 소속 배우였다. 극단의 기획도 맡고 있는 그는 습작만 50편이 넘는 ‘준비된 프로’였다. “당장 공연해도 손색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고 글이 안정돼 있다”는 심사평은 어쩌면 당연했다.

목화에 입단한 지 8년째. 대학 졸업 후 오 씨의 권유로 배우가 됐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빡빡머리 사제 등 주로 개성 강한 ‘캐릭터 배우’로 연극과 영화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신춘문예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어 1년에 4편씩 꼬박꼬박 작품을 썼고 2002년부터 매년 도전한 끝에 이번에 당선됐다. 대학로에서 그의 당선은 화제가 아닐 수 없다. ‘기성 연극인’인 그가 왜 굳이 신춘문예에 응모했을까.

“스스로에 대한 존재 증명 같은 거죠. 작가로서 존재감을 갖고 싶었어요. 글을 쓰고 싶어서 28세 때 극작과에 늦깎이로 들어갔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 작가로 불리기는 힘들 것 같아서요.”

그는 ‘평생 스승’ 오태석 씨가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자신을 “주 작가”라고 불러준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단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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