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대비하기 30선]<25>여자 나이 50

  • 입력 2006년 12월 6일 03시 01분


코멘트
《자신이 걸어온 길은 알지만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동안 믿어 왔던 사실들이 이제는 시대에 뒤처진 것이 되었다. 새로운 방법으로 생각하기를 강요받고 가치를 다시 음미하며 지금까지 몰랐던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언젠가는 꼭 해야지 하고 선언했던 것을 실천할 때가 왔다. 늘 말하던 ‘나중에’가 바로 ‘지금’이 된 것이다. 지금 하지 않으면 이제는 너무 늦다. 인생이란 중요한 것을 놓쳤다고 되돌리기 버튼을 눌러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다. ―본문 중에서》

50, 젊어서 죽지 않는 한 누구나 50이 된다. 너무도 당연한 그 일이 내 앞에 닥치면 도무지 당연하지가 않다. 서른이 될 때도 서른이란 나이의 무게가 목까지 차올랐고 마흔이 될 때는 두어 달 시름시름 앓기까지 했다. 눈앞의 마흔을 유보하고 싶던 마음과 겨우 화해하고 즐길 만해졌는데 이번에는 ‘쉰’이라고 한다. 이게 바로 삶이란 걸 전에는 몰랐다. 더구나 쉰은 비명을 지를 수도, 앓을 수도 없는 나이다. 이젠 엄살을 떨면 성인이 다된 자식들이 빤히 올려다본다. 그들에게 티끌만 한 부담도 환멸도 주고 싶지 않다.

‘여자 나이 50’이란 책을 읽었다. 퇴직이 빨라지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50대 이후의 삶이 중요해지는 건 세계적인 추세인 것 같다. 영국에서 태어나 스웨덴에 살고 있는 스톡홀름대 심리학과 교수 퍼트리샤, 그녀는 저쪽에서 ‘서드 에이지(third age)’라고 부른다는 50 이후의 삶을 훌륭하게 정의한다. 모든 굴레를 벗고 본연의 자신으로 빛을 발할 수 있는, 삶에서 가장 발달 가능성이 큰 시기라는 것이다. 닥쳐올 죽음과 황혼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기쁨과 확신을 가지고 늙어가는 자신을 마주보자고 그녀는 제안한다. 그렇다. 너무 높게 정한 높이뛰기 바(bar)일랑 조금 낮추고 실현성 없는 꿈이라면 이제는 버려야 한다.

이 책은 노후생활에 대한 지침서는 아니다. 늙음에 대비한 경제력과 건강과 인간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나열된 것도 아니다. 다만 서드 에이지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권유에 해당한다. 그건 한마디로 50 이후를 인생 발달 과정의 하나로 간주하자는 주장인데 지금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오랜 공포나 소심함과 결별할 때이며 문제를 타인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무방비로 50이 닥쳤듯 인생의 끝도 이렇게 닥쳐올 것이다. 거기에 대한 면역을 길러주려고 신은 인간의 삶에 50이란 덫을 장착해 둔 게 아닐까. 50을 맞지 않고 죽음을 먼저 맞은 친구들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제 나이 50을 인정한다는 건 쉽고도 어렵다. 그게 여성이라면 한 차원 더 복잡해진다. 젊음만이 상품성을 얻고 상품성이 곧 가치인 세상에서 생리가 끊기고 여성성을 잃어 가는 여성, 그걸 외면하느라 그동안 젊은 척하기에만 바빴다. 늙는다는 것은 자발성과 창조성으로 가득 찬 소중한 모험이라는 저자의 말을 듣고 새삼 앞에 닥친 서드 에이지에 용기가 생긴다.

50에 천명(天命)을 안다는 것, 그 천명이란 이번 생에 개도 아닌 고양이도 아닌 사람으로 태어난 것, 그것의 고마움을 안다는 뜻이라는 김화영 선생의 말씀에 적극 동의한다. 이제 쉰을 맞는, 알거나 모르는 동시대의 친구들이여, 함께 ‘여자 나이 50’을 읽자. 거기 패러다임 전환에 관한 힌트가 잔뜩 들어 있다. 남아 있는 날들은 아직 창창하고 미래를 한 번 더 계획하기에 50은 매우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냐.

김서령 생활칼럼니스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