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주전자 매만지던 섬섬옥수 느껴지는듯…‘야나기展’

  • 입력 2006년 11월 24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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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세기 석조 기름주전자
19~20세기 석조 기름주전자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을 찾은 소설가 한수산 씨가 큐레이터와 함께 고려시대 석가여래상(왼쪽)과 조선시대 약사여래상을 살펴보고 있다. 석가여래상의 몸체에 금박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사원에서 소중하게 간직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약사여래상의 경우 약상자 같은 물건을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대표적 민간 불상으로 보인다. 강병기  기자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을 찾은 소설가 한수산 씨가 큐레이터와 함께 고려시대 석가여래상(왼쪽)과 조선시대 약사여래상을 살펴보고 있다. 석가여래상의 몸체에 금박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사원에서 소중하게 간직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약사여래상의 경우 약상자 같은 물건을 손에 쥐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대표적 민간 불상으로 보인다. 강병기 기자
《소설가 한수산(60) 씨가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을 다녀갔다. 우리 민중의 삶과 함께한 공예 전시품에 깊이 매료된 한 씨가 전시회 관람기를 보내 왔다. 전시는 2007년 1월 28일까지 계속된다(월요일 휴관). 02-2020-2055》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연적(硯滴)을 만난다. 청화에 패랭이 꽃무늬를 검붉은 철사로 그려 넣었다. 이런 앙증맞은 연적을 옆에 놓고 바라볼 수만 있다면 이제라도 붓글씨를 배우고 싶어진다. 서울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화적 기억-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에서였다.

사라져 갈 위기에 처한 광화문을 한 생명체로서 예찬한 야나기의 글을 읽던 때 나는 버짐이 듬성듬성한 소년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의 생애가 집약되어 있는 도쿄(東京)의 전시장 ‘민예관’을 찾았을 때였다. 지금도 기억에 선명한 것은 장식을 겸해 건물 주변에 자갈을 깔고 거기 죽 돌아가며 진열해 놓은 우리의 옹기 항아리들이었다. 그 항아리들을 보며, 조선의 것들은 여기 와 이렇게 놓여서도 참으로 당당하구나 감탄했었다. 그 감동을 이번 전시회에서 다시 만난다.

조선 민중의 숨소리가 따스할 정도로 느껴지는 공예품들이 절묘하다. 다완, 연적, 짚바구니, 20cm 안팎의 ‘깨뒤주’까지 있다. 마치 이 물건들을 매만지던 저 옛 분들의 옷자락이 옆에서 스적이고, 숨결이 내 볼에 와 닿는 것 같다. ‘쓰임새와 아름다움’이 물결처럼 펼쳐진다.

단순함의 극치라고나 할까, 생략의 미란 이런 것이로구나 감탄하게 하는 난초무늬의 항아리 ‘청화초화문항아리’도 있다. 어찌 이렇게 단아한가. 귀한 청화를 아끼기 위하여 그 사용을 제한했던 조선시대의 한때, 재료를 아끼자는 마음이 이런 간결함을 뽑아 올렸다니!

그 가운데는 1914년 야나기가 아비코(我孫子)에 살 때, 조선 민예품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는 각진 병도 있다. 몇 개의 선으로 그려진 은은한 풀꽃 무늬, 그것을 감싼 백자의 색깔이 세월을 녹여 놓은 것 같다. 나의 개인적인 추억이 또 거기에 얽혀 들어 작품을 떠나는 발길을 잡는다. 이 작품을 만난 것이 야나기가 아비코에 살 때라면, 그곳은 내가 한때 일본에 살았던 바로 옆 마을이 아닌가.

또 다른 놀라움은 우리 전통공예에 이토록 정교하고 품격 있는 석조품(石彫品)이 있었다는 발견이다. 돌로 만든 것이 어찌 이렇게 가볍고도 날렵한가 싶은 ‘석조유주(石彫油注)’. 놋쇠로 된 가느다란 손잡이와 날렵한 몸통. 저 기름주전자를 들었을 조선 여인네의 섬섬옥수는 얼마나 아름다웠을 것인가. 디자인을 공부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이 용기들을 보았으면 하는 간절함은, 전시품 하나하나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쥐어짜듯 집약해서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쩌다가 생활 속에서 이런 아름다움과 품격을 다 잃었는가. 외제 식기, 외국제 헌 가구까지 들여와 팔고 있는 이 세태는 무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오니 거리의 간판이 어지럽다. ‘김밥천국’과 ‘스타벅스’ 두 간판이 나란히 서 있다. 저게 우리의 얼굴인가. 전시회가 안겨준 조금 전의 자부심이 한순간 깨어져 나간다.

그날 저녁, 나는 경주 가까운 산 속에 가마를 열고 있는 도예가 윤광조 형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 선조들은 참 고아하게 살았구나 감동하면서 오늘 우리의 옛 물건들을 보았습니다. 누군가는 야나기 무네요시를 ‘미학적 아나키스트’라고 했지만, 아름다움에서까지 정부와 국적을 이야기하지는 맙시다. 곧 한번 만나, 야나기가 그 아름다움에 탄식했던 우리의 것을 다시 보면서 우리 함께 탄식하지 않으시렵니까.”

한수산 작가·세종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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