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그에게 무슨 일이… 배우 이병헌

  • 입력 2006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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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해 여름’으로 오랜만에 정통 멜로에 도전한 배우 이병헌. 전영한 기자
영화 ‘그해 여름’으로 오랜만에 정통 멜로에 도전한 배우 이병헌. 전영한 기자
영화 ‘그해 여름’. 사진 제공 KM컬쳐
영화 ‘그해 여름’. 사진 제공 KM컬쳐
《배우 이병헌의 트레이드마크는 하얀 치아를 일(一)자로 드러내면서 씩 웃는 소년 같은 웃음이다.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그가 묵는 호텔 앞을 지나던 기자는 그 웃음을 한번 보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리는 일본 팬들을 목격했다. 솔직히 안쓰러웠다. 저런 사랑을 받는 기분은 어떨까. 마침 영화 ‘그해 여름’의 개봉(30일)을 앞둔 이병헌을 지난주에 만나 물었다. “그런 사랑 받아서 행복한가요?”》

● 1969년, ‘그해’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

“그냥 고맙죠. 너무 전형적인 대답이지만…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을까. 부산에선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는데도 그때까지 기다리시더라고요.”

그는 경기도의 전원주택에 사는데 한 일본인 여성은 그의 옆집을 샀다. 보통 그런 팬들을 보면 남자들은 그런다. “저 사람들 남편은 가만히 있나.” 미래의 부인이 다른 배우에게 그러면 어떡하냐고 물었다. 대뜸 “기분 나쁘죠” 한다. 그도 보통 한국 남자다.

영화 ‘그해 여름’은 대학교수인 석영(이병헌)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옛 사랑 정인(수애)을 찾는 것으로 시작된다. 둘은 석영이 대학생 시절 농촌봉사활동을 갔다가 만난 사이. 그러나 그들은 당시의 시대적 아픔 때문에 헤어지게 된다. 두 주인공의 눈물 연기가 돋보이는 ‘정통멜로’.

이병헌은 영화에서 20대 초반 모습과 60대 모습을 연기한다. “진지한 영화인데 자칫 제가 할아버지 분장한 모습이 우스울까봐 많이 걱정했어요.”

영화는 1969년의 시대상을 재현하기 위해 로케이션과 의상, 소품에 공을 들였다. 이병헌의 친구역 오달수, 방송국 PD역 유해진 등 코믹한 조연들이 웃음도 준다.

“영화에서는 한 마을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름에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를 돌며 찍었죠. 근데 오달수 씨와 하도 붙어 있게 돼서 저와 달수 씨의 멜로인 줄 알았어요.”

한마디 할 때마다 그는 계속 웃는다.

● 멜로 영화는 판타지

영화 제목은 원래 ‘여름 이야기’였다.

“제작사가 제목을 바꾼다며 상금을 50만 원 걸었어요. 제가 낸 제목이 됐는데 10만 원밖에 안 주더라고요. 이 제목을 낸 사람이 다섯 명이었대요.”

현장에서 그는 끊임없이 감독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감독 괴롭히는 배우’로 소문났다. 비교적 정적이었던 ‘그해 여름’ 시나리오도 이병헌의 아이디어 세례를 받고 다시 태어났다. 덕분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내렸을 때 ‘엉덩이가 바지를 먹은 것’을 빼 내는 동작, 전파사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수애를 바라보는 모습 등 섬세한 장면이 포함됐다.

영화 속 석영은 평생 정인만을 사랑한다. 일생 동안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 “평생 사랑이 지속됐다기보다는 젊은 시절에 한 여자가 있었고, 이후 사랑이라고 표현할 만한 감정이 없었다는 얘기겠죠. 사실 아주 어려운 일이지만 실제로 그런 사랑이 힘드니까. 멜로 영화가 일종의 판타지를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막연하지만 그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었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창문을 통해 먼 곳을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자아를 버리는 순간이 아닐까요.” 멋진 대답이라고 했더니 그는 또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그렇게 눈앞에서 자꾸 웃으면, 어쩌란 말이야.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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