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08년 伊지휘자 토스카니니 美데뷔

  • 입력 2006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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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11월 16일.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작품은 베르디의 ‘아이다’. 무대에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섰다.

이 공연장의 수용 인원은 약 3000명. 객석은 구름같이 몰린 관객들로 꽉 들어찼다. 이날은 토스카니니의 미국 데뷔 무대였다.

당시 미국 신문들은 토스카니니의 비상한 기억력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한마디로 ‘걸어 다니는 악보 도서관’이었다. 아무리 긴 악보라도 세 번만 연주하면 완전히 외워 버렸다.

언론들도 토스카니니가 몇 곡이나 외우고 있는지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심지어 어떤 신문은 “그가 160편의 곡을 악보를 보지 않고 지휘할 수 있다”고 했다. 작곡가들은 자신도 잘 외우지 못하는 자기 곡들을 외워 버리는 토스카니니에 대해 경탄을 금치 못했다.

초견(初見·악보를 처음 보고 연습 없이 연주하는 것)에도 그를 따를 연주자가 없었다. 한마디로 타고난 음악 천재였다.

토스카니니의 암보(暗譜) 실력은 지휘자로 데뷔했을 때부터 화제가 됐다. 1886년 그가 속한 악단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아이다’를 공연했다. 토스카니니는 이때만 해도 첼리스트였다.

극단과의 불화로 원래 지휘자가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자 단원들은 토스카니니를 추천했다. 비록 첼리스트였지만 그가 지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원들은 알고 있었다. 이때 그의 나이는 19세.

지휘대에 올라서자마자 악보를 덮은 토스카니니는 연주가 끝날 때까지 한번도 악보를 펼치지 않고 대곡을 지휘했다. 청중은 기립박수로 이 ‘괴물 같은 신인’에게 화답했다.

토스카니니의 특출한 암기력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지독한 근시였다고 전해진다. 공연장에서 악보를 보면서 지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는 오로지 외울 수밖에 없었다. 악보를 통째로 외워 버리는 지휘자와 일하는 연주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리허설 때 연주가 조금이라도 틀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는 지휘봉을 놓고 고래고래 괴성을 지르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가 무서워서라도 연주자들은 사소한 점 하나까지 악보에 쓰인 음표 그대로 연주해야 했다. 어떤 연주자들은 말 안 듣는 자기 아이들에게 “착하게 굴지 않으면 토스카니니가 잡아 간다”고 겁을 줄 정도였으니….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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