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47년 유엔 한국문제 결의안 채택

  • 입력 2006년 11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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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정(a long journey)’.

반기문 차기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사무총장직 수락 연설을 하면서 6·25전쟁의 상흔과 빈곤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자신이 유엔 수장에 오른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그 여정은 유엔이 한국민의 암담했던 시절을 함께해 준 덕분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유엔은 한민족이 광복을 맞은 1945년 창립됐다. 해방정국의 한국은 유엔의 동정(同情)을 받는, 실로 불쌍한 나라였다.

“금일의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국가 중 하나이다.”(1946년, 유엔의 필리핀 대표)

“이 우환(憂患) 많고 분열된 조선이 아시아의 발칸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1947년, 유엔의 중화민국 대표)

한국과 유엔의 공동 여정은 1947년 11월 14일 시작됐다. 유엔총회에서 ‘유엔 감시 아래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한다’는 내용의 한국 독립문제 결의안이 채택된 것. 소련은 미국이 주도한 이 결의안을 반대했지만 표결 결과는 찬성 43, 반대 0, 기권 6이었다.

당시 AP통신의 보도.

“소련은 미-소 양군 점령 아래 선거를 치르면 조선은 미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고 미국은 소련의 연내 철병안을 실시하면 조선은 소련의 위성국이 될 것이라고 논박했다.”

유엔의 미-소 격돌은 한반도의 좌우 대결로 이어졌다.

남한의 우익 단체들은 총선거 촉진 국민대회를 열어 “한국의 절대 독립을 위해 무한 노력을 다한 미국과 유엔에 감사한다”며 유엔 결정 감사결의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은 군중대회에서 “총선거를 감시할 유엔임시조선위원단은 미 제국주의의 주구이다. 북녘 땅에 한 발짝도 못 들여놓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때부터 남북의 ‘유엔 전투’는 냉전의 부추김 속에 계속됐다. 1975년 표 대결이 가장 처절했다. 남북대화를 촉구한 한국 측 결의안(찬성 59, 반대 51. 기권 29)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 북한 측 결의안(찬성 54, 반대 43, 기권 42)이 유엔총회에서 동시에 통과된 것.

남북은 1991년 ‘유엔 동시 가입’이란 중간 역에 함께 도착했다. 그 후 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1996∼1997)→유엔총회 의장국(2001)→유엔 사무총장 당선(2006)이란 달콤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쓰디쓴 대북 제재 결의안의 연속이다.

남북의 길고 긴 유엔 여정이 결국은 해피 엔딩을 맞기를….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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