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감독…도박 감독…리얼리티 살리는 영화속 숨은 그들

  • 입력 2006년 11월 1일 16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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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을 비추면 이 베이지색 테이블보가 예뻐요." "그릇은 뭘로 할까요? 음식의 색감이 잘 살려면…" "꽃 장식은 '스마일락스' 어때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의 식문화교육기관 '푸드 앤 컬쳐'에서 영화 '식객'의 촬영을 위한 회의가 한창이다. 음식 조리 후 세팅까지 연습하는 중. 다음날 새벽 5시, 김수진 원장은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출동해 최상급의 싱싱한 도미를 사왔다. 이 도미의 살로 전을 부친 다음 국수를 넣어 끓이는 궁중음식 도미면을 만들어야 한다.

김 원장은 영화 '식객'의 음식감독이다. 허영만의 요리 만화 '식객'을 스크린에 옮기는 이 영화에는 100여 가지 음식이 나와 음식감독이라는 직함이 생겼다. 재료비만 5000만원 정도. 그 다음날, 용인실내체육관에서는 5가지 생선을 재료로 하는 요리 대회 촬영이 있었다. 김 원장은 촬영 내내 주연 배우 김강우와 임원희 옆에서 요리법을 지도했다.

"처음에 칼질도 못하던 배우들이 이젠 무채를 '예술'로 썰죠. 촬영 전 4주간 1년 동안 배울 요리를 다 배웠으니." 이날 오후, 다음날 촬영에 쓸 황복이 남해에서 도착했다. 제철이 지나 자연산이 없어 일부러 배를 띄워 구해 온 것. 30마리에 300만원이다. '왕의 남자'의 궁중 연회상도 만들었던 김 원장이 이끄는 팀 12명, 특급 호텔 조리사 6명이 '식객' 촬영에 동원된다.

관객은 똑똑하다. 영화 장면에 조금이라도 리얼리티가 떨어지면 가차 없는 비판이 가해진다. 그래서 최근 촬영 현장에는 영화 소재를 잘 아는 민간인 전문가가 꼭 등장한다.

관객 622만 명을 넘은 영화 '타짜'에는 과거 타짜였던 장병윤 씨가 기술자문으로 참여했다. '도박감독'인 셈. 그는 배우들에게 촬영 전 화투패 섞는 것부터 밑장빼기(윗장을 빼는 척하면서 밑장을 빼는 기술) 등 고난도 기술까지 가르쳤다. 조승우는 다른 건 다 잘했지만 밑장빼기가 안돼 그 부분은 최동훈 감독이 손 대역을 했다. 그는 "영화에 참여한 이유는 타짜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일반인들에게 돈 딸 확률이 0.1%도 안 된다는 걸 깨닫도록 하기 위해"라고 강조했다.

촬영 현장에 나오지는 않지만 직간접으로 도움을 주는 '얼굴없는 전문가'들도 있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여주인공 김지수는 동대문 짝퉁 디자이너. 빚에 허덕이는 그가 명품 카피 옷에 라벨까지 붙여 팔다가 상표법 위반으로 걸리는 내용이 나온다. 변승욱 감독은 동대문 의류업체 사람들을 상대로 취재를 했지만 다들 잘 얘기 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만난 한 매장 주인이 "1년에 몇 번씩 이탈리아 등지에 명품으로 빼입고 나가 매장에서 몰래 신상품 사진을 찍거나 사서 자세히 본 뒤 바로 환불한다"는 등의 동대문 돌아가는 얘기를 해 줬고 이는 영화에 김지수가 홍콩에 가는 것으로 반영됐다.

'사랑따윈 필요없어'에서 호스트로 나오는 김주혁은 실제 호스트를 만났다. 호스트가 조언한 '여성을 사로잡는 방법'은? 얼굴도 옷차림도 아닌 '매너'였다.

'잔혹한 출근'에서 김수로는 사채 빚 때문에 유괴를 저지른다. '돈에는 정이 없다네'하는 영화 속 사채업자의 모습은 김태윤 감독이 실제 만난 사람. 김 감독은 "학생 때 너무 힘들어 사채를 썼는데 '학생, 열심히 살아야 돼'하며 점잖게 말하더니 원금만큼 이자를 받더라"며 "좋은 말하며 뒤통수치는 영화 속 캐릭터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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