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2년 다미선교회 ‘휴거의 날’

  • 입력 2006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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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찾아왔다. 그들에겐 ‘마지막 밤’이.

어둠을 밝히는 흰옷들이 모여들었다. 기도와 찬양. 오후 9시경 “평택에서 예수가 꽃마차를 타고 재림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도는 열광으로 변했다. 이제 곧 ‘신성한 육체로 변해 하늘로 올라갈’ 터였다.

서울의 다미선교회 본부는 벌써 반쯤 공중에 떠 있었다. 밖에선 20대 청년이 신에게 뺏긴 애인을 찾겠다며 나체 소동을 벌이거나 말거나.

나방이 불빛을 쫓자 ‘나방의 휴거’라고 했다. TV 화면에 잡힌 붉은 조명은 ‘종말의 불기둥’이라며 카운트다운을 했다.

드디어 자정. 벼락 함성과 울음 홍수, 그리고 다음은….

시계는 딸깍 넘어갔고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스티븐 솔하임)

휴거(携擧) 신도들은 돌아가 휴거(休居)했다.

1992년 10월 28일은 그들에게 ‘천년왕국’의 문이 열린다는 날이었다. 공무원과 교사, 대기업 간부가 직장과 가족을 버렸다. 세계의 눈에 비친 서울은 아마겟돈의 땅이었다. 종말론이다.

종말론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인류는 태생부터 최후를 고민했다. 고대 조로아스터교의 ‘불의 정화’와 유대교의 메시아, 불교의 미륵불은 고민의 산물이기도 하다. 1990년대 중반 프랑스 등지에서 일어난 ‘태양사원’ 신도들의 떼죽음만 봐도 종말론은 동서고금을 아우른다.

해외에서 서울에 주목한 건 종말을 외쳐서 만은 아니다. 20세기 세계의 종교인구는 줄어드는 추세인데 한국은 예외였다.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와 아울러 도시의 밤하늘은 붉은 십자가로 뒤덮였다. 산이란 산엔 절이 들어섰고 동네마다 점집이다. 불과 1세기 만에.

윤이흠 전 서울대 교수는 “한국인은 끊임없는 혼란의 역사 탓에 ‘극적 해결’을 열망했다”고 진단한다. 종교학자 데미안 톰슨도 ‘한(恨)’의 정서에 공감했으나 우려도 잊지 않았다.

“교파가 다르다고 하나의 신(God)을 ‘하느님’과 ‘하나님’으로 부른다. 길거리에서 타 종교인에게 증오를 퍼붓는다. 개인과 가족에게 집착하는 건 집단적 정체감이 옅어서인가. 명절의 끝없는 귀성 행렬은 ‘그날 이후(The Day After)’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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