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동성]1909년 오늘 하얼빈의 총성

  • 입력 2006년 10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10월 26일 하면 1979년 궁정동에서 일어난 총성을 연상한다. 그 총성은 한국 현대사를 바꿔 놓았다. 그날로부터 정확하게 70년 전, 하얼빈(哈爾濱) 역에서 퍼진 총성은 동북아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향해 발사한 총성을 계기로 “(조선과 중국) 두 나라 인민의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공동 투쟁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제국과 만주를 병탄하려고 러시아 재무대신 블라디미르 코콥초프를 만나러 하얼빈에 온 이토 히로부미 일본 추밀원 의장을 사살함으로써 일본의 야욕을 만천하에 알렸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의 주요 신문은 당시 ‘을사보호조약을 한국인이 희망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과 달리 한국인의 의사에 반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하얼빈 시는 그동안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조형물 설치나 행사 개최를 제한했다. 하얼빈 시의 태도는 올해 들어 변했다. 7월에는 조선족문화예술관을 설립하고 1층에서 안중근 의사 기념전을 열었다.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9년까지 안중근박물관을 세우고,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하얼빈 역에 기념물을 설치하는 등 영웅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中서 안중근의사 재평가 바람

하얼빈에서 만난 고위 간부는 ‘안중근 의사’가 아니라 ‘안중근 장군’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중근 장군은 1908년 연해주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모아 의병을 조직해 항일전을 벌였고, 이때 대한의군참모중장(大韓義軍參謀中將)의 직함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 전쟁에서 일본 군인을 잡아 놓고도 포로수용소가 없으면 포로를 풀어 주어야 한다는 국제공법에 따라 이들을 모두 석방했습니다. 따라서 안중근 장군이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쏜 총은 개인이 저지른 테러가 아니라 의병 전쟁의 연속으로 일국의 장군이 적국의 장군과 벌인 전쟁 행위였습니다. 사형장으로 가기 직전에도 ‘나라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유묵까지 남겨서 죽는 시각까지 군인의 신분을 잃지 않았습니다.”

안중근 의사라는 거인이 남긴 유산을 중국에 빼앗길까 봐 걱정할 일이 아니라, 한국의 아들인 안중근 의사를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더욱 깊이 연구하면서 영웅으로 모셔야 한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는 단독 행위가 아니었다. 하얼빈 역에 가기 전에 왼손 무명지를 끊어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단지동맹이라는 조직에 11명의 애국자가 참여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는 12월 중국 뤼순(旅順)에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안중근 의사가 유죄판결을 받자 편지를 보냈다.

“응칠(안중근 의사의 어릴 때 이름)아! 네가 이번에 한 일은 우리 동포 모두의 분노를 세계만방에 보여 준 것이다. 이 분노의 불길을 계속 타오르게 하려면 억울하더라도 상고를 하지 말고 우리 민족의 대의를 위해 거룩한 죽음을 택해야 될 줄로 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이 그른 사람들에게 재판을 다시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더욱이 그들의 영웅으로 대접을 받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너를 일본 놈들이 살려 줄 리가 있겠느냐. 혹시 자식으로서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이 불효라고 생각해서 상고하겠다면 그건 결코 효도가 아니다. 기왕에 큰 뜻을 품고 죽으려면 구차히 상고를 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기 바란다.”

잊힌 애국지사 발굴 노력을

조마리아 여사는 살기 위해 구차스러운 행위를 하지 말라는 큰 가르침을 줬다. 당시 일본인이 운영하던 대한매일신보는 ‘시모시자(是母是子·그 어머니에 그 아들)’란 표현을 썼다. 조마리아 여사가 경찰 책임자에게 한 말에서 우리는 숙연함을 느낀다. “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나 나라의 일로 죽는 것은 국민 된 의무다. 내 아들이 나라를 위해 죽는다면 나 역시 아들 따라 죽을 따름이다.”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에서 친일했던 사람을 색출하는 작업보다 먼저 할 일은 조마리아 여사, 안중근 의사와 함께 거사를 준비했던 우덕순 선생 등 역사 속에 묻힌 애국지사를 발굴해 제자리를 찾아 드리는 노력이라고 믿는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