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산 자여, 죽은자는 죽은자에게 맡겨라…‘체인지링’

  • 입력 2006년 10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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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링/오에 겐자부로 지음·서은혜 옮김/372쪽·9800원·청어람미디어

《유럽에는 아름다운 갓난아기를 요정이 시샘해 보기 흉한 아이와 바꿔 놓는다는 설화가 있다.

이렇게 바뀐 흉한 아이를 ‘체인지링’이라고 부른다.

소설 ‘체인지링’은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 등이 아름답게 바뀌는 모습을 통해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잘 알려졌듯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71·사진) 씨의 작품에는 자신의 삶을 소설화한 것이 많다. ‘개인적 체험’ ‘만년 원년의 풋볼’ 등에서 그는 장애를 가진 아들과 그 아들로 인해 우울해하는 아내, 예술 세계를 이해해 주는 오랜 친구를 등장시켰다. 실제로 그가 장애인 아들을 두었고 이로 인해 고통 받으며 동시에 문학적 영감을 얻어 온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친구 ‘기이 형’도 실제 인물이다. 그의 처남이자 유명한 영화감독인 이타미 주조(二丹十三·1933∼1997)를 형상화한 것이다. 영화 ‘담포포’ ‘민보의 여인’ 등을 통해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쳤던 이타미는 노년에 갑작스럽게 목숨을 끊는다. 소설 ‘체인지링’은 이 사건 이후를 다룬 것이다. 오에 씨 만년의 장편 3부작 중 첫 작품(2000년 발표)으로도 잘 알려졌다.》

어느 날 밤 아내 지카시가 남편 고기토에게 전한 소식. “고로가 자살을 했어요.” 고로는 고기토가 열일곱 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이자 아내의 오빠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아름다운 젊은이, 후에 영화감독이 되어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사람, 고기토에게 소설가가 되라고 격려해 준 벗. 친구와 오빠를 잃은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자살한 배경을 캔다며 언론에서는 고기토 가족을 연일 괴롭힌다. 실제로 오에 씨 가족이 겪었을 고통을 헤아릴 수 있는 대목이다.

슬픔에 잠긴 고기토에게 고로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테이프가 든 상자가 배달된다. 고기토는 테이프를 들으면서 망자와 교감하는 한편 유년기에 두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꿔 버린, 한 우익집단 모임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소설의 메시지는 상처에 대한 극복이다. 작가는 가까웠던 사람의 죽음을 통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상처를 드러낸다. 작품과 발언을 통해 일본의 우익집단을 비판해 온 소설가 고기토는 수십 년간 계속된 우익의 비난에 지쳐 있었다. 그랬던 고기토는 묻어 뒀던 유년기의 체험을 끄집어내 기록하면서 상처를 치유한다.

밝고 재능 있는 청년이었던 오빠가 언제부턴가 그늘진 모습이 된 것을 안타까워하던 아내 지카시. 젊은 날의 오빠 같은 아이를 낳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태어난 아이는 장애아였다. 오빠도, 아이도 ‘체인지링’(소설의 원제로 유럽에서는 아름다운 아이가 태어나면 요정이 보기 흉한 아이와 맞바꿔 놓는다는 설화가 있으며 ‘체인지링’은 이렇게 바뀐 흉한 아이를 가리킨다)이라고 믿는 지카시. 아들이 지력은 떨어지지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희망을 품으며 오빠의 연인이 임신해 ‘새로운 고로’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는 것으로 소설은 아픔을 이겨 내는 모습을 보여 준다.

“만년의 소설가가 해야 할 역할은 불안감과 상실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람들의 출현을 장려하는 일”이라고 밝혀 온 오에 씨. ‘체인지링’은 작가의 신념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다소 음울하고 건조한 문체로 쓰인 앞선 작품들과 달리 한결 쉽고 빠르게 읽히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진행이 돋보인다. 소설의 마지막, 나이지리아 시인 월레 소잉카의 시 ‘죽음과 왕의 마부’의 몇 구절에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죽어 버린 자들은 그만 잊도록 하자, 살아 있는 자들조차도/그대들의 마음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로만 향해 주기를.’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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