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로 논술잡기]‘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

  • 입력 2006년 10월 21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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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정재환 지음/212쪽·9900원·김영사

비판적 사고는 논술이 요구하는 창의적 문제 해결력의 바탕이다. 그 비판적 사고를 다질 좋은 기회를 우리는 일상적 언어 생활에서 발견한다. 우리의 모국어만큼 무지와 혼란 속에 빠져 있는 것도 드문 까닭이다.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는 속담을 보자. 사람들은 대부분 ‘곁불’로 알고 있지만 여기서 ‘겻불’은 겨를 태우는 불, 그러니까 미미한 불기운을 뜻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도 그렇다. 흔히 ‘면장’을 ‘면장(面長)’으로 생각하지만 이 말은 ‘담장에서 얼굴을 면(免)한다’는 ‘면면장(免面牆)’, 곧 ‘면장(免牆)’에서 나왔다. 견식이 없으면 담벼락을 마주한 듯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면장이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알 듯 모를 듯 어려운 우리말. 동네 이쪽에는 ‘카센타’가 있고, 저쪽에는 ‘카센터’가 있다. ‘수퍼’가 있는가 하면 ‘슈퍼’가 있고 ‘아구찜’ 집에선 ‘아귀찜’을 판다. 조금 틀려도 뜻만 통하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우리는 테니스 라켓조차도 정확하게 잡기를 주문한다. 더욱이 영어는 철자 하나, 발음 하나에 그렇게 연연해하면서 우리말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걸까?

무지나 오류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들의 언어 환경과 마음가짐이다. 인터넷에는 외계어가 떠다니고 방송에서는 비속어가 툭툭 튀어나온다. 게다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큰 기업의 이름은 온통 영어 알파벳뿐이다. 한국담배인삼공사의 회사 이름 KT&G가 ‘코리아 토바코 그리고 진셍’이 아니라 ‘코리아 투모로 그리고 글로벌’이라면 이해가 가는가?

말은 곧 얼이다. 원칙도 규칙도 없는 한글 표기는 곧 원칙도 규칙도 없는 한국을, 상스럽고 품위 없는 한국말은 곧 상스럽고 품위 없는 한국인을 보여 주는 자화상이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모국어의 실상을 조명함으로써 이 책은 나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묻는다. 목적과 수단, 그리고 현실과 이상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슬기와 지혜에 대한 그 물음은 나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궁금하다. 나의 받아쓰기 실력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도리도리 □□. ‘젬젬, 잼잼, 죔죔.’ 엄마 앞에서 □□□. ‘짝짝꿍, 짝짜꿍, 짝짜쿵.’ 주관식은 언제나 어려운 법. ‘죔죔’과 ‘짝짜꿍’을 썼다면 특1급이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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