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가 명-청나라 몰락 불렀다

  • 입력 2006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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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체로서 인간 행위에 초점을 맞춰 왔던 근대역사학에 대한 도전으로서 기후의 영향을 강조하는 연구들이 잇따라 소개되고 있다.

최근 출간된 ‘자연재해와 유교국가’(일조각)는 중국 한대(漢代)의 자연재해가 유교를 국가 이념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인 김석우 박사의 2003년 서강대 박사학위논문을 발전시킨 이 책은 중국 한대 역사기록에 나타난 자연재해와 이에 대응하는 황정(荒政·기근때 백성을 구하는 정책)을 분석했다.

“중국 24사 전체가 재황(災荒)사가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양의 사서에는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에 대한 기록이 수두룩하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부덕한 정치에 대한 하늘의 경고로 이해한 재이(災異)사상의 산물로 간주해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저자는 한대의 재해기록 중 70%는 신뢰할 만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중 전한(前漢)시대는 한대부터 당대까지 1000여 년 중국역사에서 황허(黃河) 강의 범람피해가 가장 컸고, 후한시대는 청대 다음으로 지진피해가 컸다. 이렇게 점증하는 자연재해는 통일국가시대인 한대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됐다. 국가의 안정적 유지가 국정운영의 첫 번째 목표가 됐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이 과정에서 ‘유교의 국교화’에서 ‘제국의 유교화’로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전자가 황제통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교를 적극 동원했다면 후자는 자연재해 증가로 인한 민심이반을 막기 위해 민본주의를 강조하는 유교를 수동적으로 채택했다는 설명이다.

‘엘니뇨: 역사와 기후의 충돌’(새물결)은 세계적 기상이변의 주범으로 꼽히는 엘니뇨가 인류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추적했다. 이 책은 1812년 나폴레옹 군대와 1941년 히틀러 군대의 러시아침공 실패가 엘니뇨로 인한 혹한의 결과이며 중국 명과 청의 몰락도 각각 1640∼41년과 1877∼78년 엘니뇨에 의한 대기근의 산물임을 주장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최근 열린 한림과학원 수요세미나에서 조선왕조실록 상의 기상이변의 83%가 1500∼1750년에 집중됐으며 이는 17세기 유성(운석)과 혜성 등의 지구 대기권 진입으로 인한 기상이변이 급증했다는 유럽의 ‘외계충격설’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런 기상이변은 종교와 연결돼 유럽에선 16세기 중반부터 나타난 ‘마녀사냥’과 종교개혁으로, 천재지변을 정치문제로 인식하는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선 사화와 당쟁으로 표출됐다”고 주장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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