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자본의 이름으로”… ‘백화점의 탄생’

  • 입력 2006년 9월 23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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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유층 고객들이 지금도 자주 찾는 백화점으로 알려진 ‘봉마르셰’. 동아일보 자료 사진
프랑스 부유층 고객들이 지금도 자주 찾는 백화점으로 알려진 ‘봉마르셰’. 동아일보 자료 사진
◇ 백화점의 탄생/가시마 시게루 지음·장석봉 옮김/223쪽·1만1000원·뿌리와이파리

“경성 시내 여학생들은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에 가는 길에 으레 미쓰코시나 조지야 백화점을 들러 경성역으로 향한다. 서울에서도 모던의 최첨단을 달리는 본정통 백화점 상품들로 치장, 서울 ‘녀학교’를 다니고 있는 자신의 모던함을 더욱 돋보이게.”

20세기 초 조선 근대화의 도입을 보여 준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의 한 대목이다.

화신, 미쓰코시, 조지야 등 일제강점기의 빅3 백화점은 당시 ‘모던뽀이’, ‘모던걸’들에게는 필수적인 문화 연수 코스였다. 이것은 조선만의 현상이었을까?

저자 가시마 시게루에 따르면 백화점의 출현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소비를 넘어 문화를 주도하는 백화점의 존재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하나의 단계와도 같았다.

저자는 세계 최초의 백화점 봉마르셰의 설립자인 아리스티드 부시코 부부의 경영사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차지하는 백화점의 지위를 짚어 내고 있다.

19세기 중반 프랑스는 백화점이 탄생하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옷감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대중교통 수단으로 마차가 등장했으며 가스등 덕분에 일몰 뒤에도 윈도쇼핑을 할 수 있었다.

1852년 부시코는 파리에 봉마르셰라는 거의 모든 물건을 판매하는 쇼핑몰을 개장했다. 이것이 백화점의 효시다. 부시코는 박리다매, 바겐세일, 반품 가능, 이벤트 전시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판매 전략으로 중산층 고객을 모으기 시작했다.

1872년 부시코는 백화점 안에 독서실을 만들었는데 이 공간은 번잡한 쇼핑에 거리를 두던 부르주아 및 인텔리 계층의 마음을 사로잡아 사교장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백화점은 상품 판매소를 넘어 문화 리더로 부상한다. 유명 인사들이 백화점에서 구입하는 물건들은 곧 유행이 되었으며 그들이 백화점 사교장에서 나눈 대화는 곧 사회적 이슈로 발전한 것이다.

형형색색의 조명으로 빛나는 웅장한 대리석의 건물, 쇼윈도에 화려하게 진열된 고급 물건, 간혹 볼 수 있는 유명 인사, 언제나 친절하고 기꺼이 깐깐한 요구를 들어주는 점원들.

자본주의 시기에 백화점은 일시적이나마 신분 상승을 체험할 수 있는 ‘꿈의 동산’이 되었다.

부시코가 내놓은 이 ‘마법’의 위력이 궁금하다면 추석 대목을 앞둔 이번 주말에 가까운 백화점에 가 보면 알 수 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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