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詩는 사랑하는 법을 속삭여 주죠”

  • 입력 200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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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도종환 씨(왼쪽)와 가수 겸 작곡가 이지상 씨가 서울 송곡여고 도서관에서 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훈구 기자
시인 도종환 씨(왼쪽)와 가수 겸 작곡가 이지상 씨가 서울 송곡여고 도서관에서 학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훈구 기자
《“영혼이 맑은 사람은 눈동자가 따뜻하답니다. 남학생이 우리 여학생들 볼 때 어디부터 보는 것 같아요?”(도종환 씨)

“다리요!”(학생들·일동 웃음)

“그렇게 딴 데를 보는 사람의 마음을 눈을 봐야 한다고 돌려놓는 게 문학이에요. 문학은 우리를 아름답게 합니다.”(도종환씨)

19일 오전 서울 중랑구 망우동 송곡여고 도서관. 온돌마루가 깔린 독특한 구조의 이 도서관에서 시인 도종환 씨와 여고생들이 함께하는 만남의 장이 열렸다. 이날 모임은 서울문화재단이 벌이는 독서캠페인 ‘책 읽는 서울’ 중 ‘저자와 함께 학교에 가다’ 프로그램의 첫 번째 행사.》

마루에 80여 명이 모여 앉자 가수 겸 작곡가 이지상 씨가 먼저 기타를 들고 노래 ‘무지개’를 불렀다. “사랑이 지나치면 사랑이 아닌 것을∼.”

노래를 마친 이 씨가 최근에 무지개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을 묻자 한 여학생이 얼른 손울 들고 “전철 타고 오면서 봤어요”하고 대답한다.

“그럼 무지개를 좇아가 본 사람 있어요? 전 어릴 때 무지개를 잡으러 동산에 올라갔는데 정작 큰 산위에 걸려 있더라고요. 어머니가 타박하셨어요. ‘그게 니 꺼니?’ (웃음) 하지만 나는 그걸 좇아가 봤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요. 목표를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답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시인의 강연 주제는 ‘문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시인은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늘 읽어 주는 시”라면서 다이애나 루먼스의 시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을 낭송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만일 내가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자존심을 세워 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그런데 어른들은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나도 아이를 키우면서 책을 읽으라고 권하기만 했지 같이 책을 읽으며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게 후회스러워요.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껴안아 줬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어른의 고백으로 강연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숙연해졌다. 시인은 말을 이었다.

“어른을 질책하려고 이 시를 읽어 주는 게 아니랍니다. 좋은 시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알려줍니다. 이승하의 시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를 한번 들어볼까요.”

시인이 낮은 음색으로 시를 읽자 앞자리의 몇몇 여학생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특별한 사랑을 꿈꿀 거예요. 그런데 특별한 사랑은 특별한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보통의 사람을 만나서 그를 특별히 사랑하면 이루어지는 거랍니다. 특별한 사랑의 방법은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죠….”

강연은 문학이 어떻게 사람을 성찰하게 하고 힘과 용기를 주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2학년 이효진 양은 “수업시간에는 시를 배워도 입시 때문에 곰곰이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했는데 오늘 살아가는 방법과 시를 연결해 해석해 주는 말씀을 듣고 시가 이런 거구나, 새삼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은 주변에 대형서점이나 문화시설이 없는 동네의 문화행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서교사 이덕주 씨는 4년째 문화강좌를 운영하며 학생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성교제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가’ ‘부모-자식간 대화나누기 교육’ ‘독서 논술교육’등의 무료강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이날 저자와의 만남 행사도 주민들에게 개방됐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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