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세상에 단 하나 웨딩도 DIY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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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Y(Do It Yourself·스스로 만들기) 예비 신부.’

내년 3월 결혼할 예정인 이수진(27·여·공인중개사) 씨에게

가족과 친구들이 붙여 준 별명이다.

지난해 9월 남자친구와 결혼을 약속한 뒤 자신이 입을 웨딩드레스와 이브닝드레스를 직접 만들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됐다.》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웨딩드레스 DIY를 선언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남자친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웨딩드레스의 약 80%를 만들었다. 피로연에서 입을 이브닝드레스를 최근 완성했다.

주위에선 이제 ‘작품’의 조기 공개를 요구하고 있지만 예비 신부의 반응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다. 결혼기념 촬영을 할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씨처럼 결혼 예복이나 그릇, 가구 등의 혼수품을 직접 제작하는 ‘DIY 예비 신부’가 늘고 있다.

○ 나와 내 가족만의 혼수품

“이 세상에 하나뿐인 웨딩드레스니까요.”

결혼 준비와 직장 일로 바쁜 와중에 1년씩 공을 들여가며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이 씨의 답변이다.

웨딩드레스 대여 비용은 통상 100만 원 안팎. 구입하려면 수백만 원이 든다. 이 씨가 지금까지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데 쓴 비용은 50여만 원. 마무리 작업을 하는 데 10만∼20만 원이 더 들어갈 예정이다.

그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나만의 웨딩드레스’를 장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손수 제작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결혼기념일에는 항상 입을 겁니다. 결혼기념일에 웨딩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고 결혼생활의 의미를 남편과 함께 되새기고 싶거든요.”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대원C&A홀딩스 김연주(32) 차장은 지난해부터 결혼 후 사용할 밥 그릇, 국 그릇, 찻잔, 접시 등을 만들고 있다.

고교와 대학을 일본에서 마친 김 씨는 혼수품을 직접 만드는 일본 친구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가 유독 그릇 제작에 정성을 쏟는 것은 ‘미래의 가족’에게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김 씨는 “결혼 후 자녀를 두 명 갖고 싶어 4인 가족용 그릇을 만들고 있다”며 “가족 간의 대화가 오가는 식사 시간을 편안하게 꾸미고, 아이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어 그릇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 정서안정에 좋은 신부 수업

예비 신부들이 꼽는 혼수품 DIY의 또 다른 장점은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 12월 결혼 예정인 이진희(28) 씨는 1년간 20개의 그릇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티테이블, 책꽂이, 촛대 등 인테리어 소품 제작에 매달리고 있다.

원래 이 씨는 ‘추억 만들기’ 차원에서 자신과 남편의 찻잔 정도만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찻잔을 만드는 데 재미를 붙여 더 많은 그릇과 인테리어 소품 제작에 나섰다. 그는 “결혼 날짜를 잡으면 기쁘고 행복하면서도 긴장되고 두려워지는 게 신부의 심리”라며 “소품 제작에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때그때의 기분을 그릇 아래에 짧은 단어나 작은 무늬로 표현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부케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는 이유미(27·회사원) 씨도 비슷한 이유로 ‘DIY 예찬론’을 폈다.

11월 결혼을 앞둔 그는 결혼 준비로 바쁘지만 매주 한번은 관련업체가 개설한 부케 만들기 수업에 반드시 참석한다. 결혼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보내는 일상을 가다듬고, 주위의 다른 예비 신부들과 신혼집 예식장 신혼여행 등의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다.

이 씨는 “부케를 만들면서 예비 신부에게 생기기 쉬운 예민함이 많이 사라졌다”며 “남자친구도 부케 수업 덕택에 마음이 넓어졌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소개했다.

○ 개성과 실용 중시가 낳은 결혼문화

웨딩드레스 만들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웨딩그룹아이’에 따르면 2년 전 10여 명에 불과했던 예비 신부 수강생이 올해는 50여 명으로 늘어났다. 예비 신부들을 위한 특별 강좌인 ‘브라이드 반’도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그릇과 꽃을 중심으로 테이블 용품 만들기 강좌를 열고 있는 ‘테이블아트’의 경우 예전엔 수강생 대부분이 주부였지만 최근엔 결혼 날짜를 잡은 예비 신부와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결혼 적령기 여성이 늘고 있다. 28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열리는 ‘토야 테이블웨어 페스티벌’의 DIY 코너에 참가 의뢰를 한 신청자 중 상당수도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다.

전문가들은 개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신세대의 사고방식이 결혼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문화평론가인 서정신 스프링컨설팅 대표는 “유명 디자이너의 웨딩드레스와 그릇은 너무 비싸 웬만한 경제력으론 장만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타인과 똑같아지기를 거부하는 신세대 예비부부들이 차선책으로 DIY 혼수품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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