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주의’ 제3의 길인가

  • 입력 2006년 9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공화주의는 현대인들에겐 낯선 정치이념이다. 공화주의의 실현체인 공화국은 이제 민주국가의 동의어로 이해될 뿐이다. 그러나 공화주의는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동체주의라는 근대정치사상의 발원지인 동시에 이들과 분명히 차별되는 정치적 실체로 존재했다.

고대 로마공화정과 14∼16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그것이다. 공화주의란 라틴어로 ‘공적인 일’ 또는 ‘공적인 공간’을 뜻하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비롯했다. ‘공화(共和)’는 ‘여러 사람이 화합해 공동의 일을 추구한다’는 뜻을 지닌다.

플라톤이 저서 ‘국가’에서 지적했듯이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각각 참주(僭主)정, 과두정, 중우정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혼합한 정치체제다.

서구에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면서 양자의 기원인 공화주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위기의 핵심은 바로 정치적 무관심의 확산과 금권주의와 대중영합주의의 팽배다. 이탈리아 출신의 모리치오 비롤리(정치학·사진)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1999년 펴낸 ‘공화주의’(인간사랑)의 국내 번역출간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제3의 길’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공화주의 사상을 소개한다.

[1]공화주의 vs 자유주의 - 법은 지키되 예속은 거부한다

공화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가장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의 전통과 일치한다. 자유주의가 ‘간섭 없는 자유’를 중시한다면 공화주의는 ‘주종관계로 예속되지 않는 자유’를 지향한다. 간섭이 국가가 개인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뜻한다면 예속은 실제로 그런 간섭이 없더라도 기업가와 노동자, 상관과 부하,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 알게 모르게 작동하는 사적 지배-종속의 관계를 말한다. 자유주의적 자유가 ‘간섭의 부재’라는 소극성을 띤다면 공화주의적 자유는 자신의 능력발휘가 타인의 자의에 종속되지 않는 적극성을 띤다.

[2]공화주의 vs 민주주의 - 민중의 지배는 중우정치를 낳는다

자유주의가 선천적 자유관에 기초한다면 공화주의는 후천적 자유관을 갖고 있다. 이는 공공의 문제를 시민의 적극적 참여로 결정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전통과 맥이 닿는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자유가 민중의 직접적 정치참여를 선호한다면 공화주의적 자유는 대의제를 지지한다. 공화주의는 엘리트중심의 자의적 권력이 야기할 소수의 오만을 경계하는 것만큼 민중의 무제한적 권력이 야기할 우매함의 확산 역시 경계한다.

[3]공화주의 vs 공동체주의 - 애국심은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다

공화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참여와 희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주의(또는 민족주의)와도 닮았다. 그러나 공동체주의의 애국심이 문화 종족 종교 등 특정 가치관에 기반한 것이라면 공화주의의 애국심의 핵심은 예속상태의 종식이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인위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대승적 사랑(카리타스)이다. 이 사랑은 자신의 목숨과 사생활을 희생해야 하는 순교자의 그것이 아니다. 자신의 자유로운 사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일상의 사랑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