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왔다…대중문화 새 코드는 ‘부성애’

  • 입력 2006년 8월 26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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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잃은 부모 마음이 한번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냄새가 십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괴물’에서 박강두의 아버지인 박희봉(변희봉)과 현서의 아버지인 박강두(송강호)의 자식 사랑은 괴물의 물리적 힘에 대항하는 유일한 힘이다. 영화 속 숨은 주인공은 바로 ‘부성애(父性愛)’다.

○ 원더풀! 아빠의 르네상스 시대

올 하반기를 이끌어 갈 대중문화 코드는 ‘부성애’다. 그동안 아버지는 직장과 가정에서 무기력하고 소외된 남자로 그려졌으나 최근 영화, 방송, 광고 등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진정한 남자’로 표현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영화에서 두드러진다. 3일 개봉한 ‘플라이 대디’에서 39세 평범한 중소기업 과장 장가필(이문식)은 성추행당한 딸을 위해 싸움하는 법을 배운다. 24일 개봉할 영화 ‘원탁의 기사’에서는 뇌진탕으로 사망한 아버지(임하룡)의 영혼이 “잠시만이라도 아들 곁에 있고 싶다”며 아들의 친구로 환생한다. 앞으로 개봉될 설경구 주연의 영화 ‘그놈 목소리’와 김수로 주연의 ‘잔혹한 출근’ 등 아버지가 주인공인 영화가 줄을 잇고 있다.

모성애를 많이 다루던 TV 드라마에서도 부성애 열풍을 찾아볼 수 있다. KBS2 드라마 ‘투명인간 최장수’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강력계 형사 최장수(유오성)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동안 딸에게 최선을 다한다. MBC 드라마 ‘주몽’에서는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허준호)가 죽는 순간까지 꿈, 철학, 사회적인 역할 등을 어린 주몽에게 알려 주는 등 강한 부성애를 드러낸다. KBS2 오락 프로그램 ‘그랑프리 쇼 여러분’의 코너 ‘불량아빠 클럽’에서는 이경규 김구라 김창렬 등 자녀를 둔 연예인이 출연해 자녀 교육에 대해 얘기한다.

광고에서도 부성애는 단골 소재가 됐다. SK텔레콤 광고에서는 외국여행을 떠나는 딸에게 아버지가 문자메시지 로밍 서비스를 알려 준다. 대한생명 광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넘어질 것을 두려워 마라, 어른이 되는 것을 겁내지 마라”라고 시집가는 딸에게 조언한다.

○ 아버지는 가족의 영웅

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중문화에서도 가부장적 권위를 잃고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아버지를 동정과 연민의 대상으로 다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최근 나타난 ‘아빠 르네상스’ 현상은 아버지상의 재정립을 위한 움직임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자녀의 수평적 관계로의 변화 △‘쿨한’ 친구 같은 아버지상 △자신의 자아실현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동일선상에 놓는 모습 등은 젊은 남성들에게도 매력적으로 인식된다.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대중문화 속 아버지상이 이순재, 최불암에서 송강호, 이문식으로 바뀌면서 아버지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는 ‘아머니(아버지+어머니)’의 역할을 떠맡았다”며 “이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아버지가 가정에 더 밀착하는 ‘가족의 영웅’으로 재탄생되는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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