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주스님, ‘그것은 목탁구멍…’ 출연 다섯 여배우 삭발식

  • 입력 2006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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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에서 ‘비구니 버전’으로 성을 바꿔 다시 무대에 오르는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위해 삭발한 여배우들. 신원건 기자
‘비구’에서 ‘비구니 버전’으로 성을 바꿔 다시 무대에 오르는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위해 삭발한 여배우들. 신원건 기자
삭발식 하는 월주 스님. 신원건기자
삭발식 하는 월주 스님. 신원건기자
“머리를 삭발하는 것은 무명심(無明心)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애착과 집착, 미련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예인(藝人)으로서 관객을 감동시키십시오.”

23일 오후 2시 40분 서울 광진구 구의2동 영화사(永華寺)의 대웅전에서는 조금 특별한 ‘삭발식’이 열렸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인 월주 스님이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에 출연하는 연운경 이영란 씨 등 여배우 5명의 ‘삭발’을 직접 주관한 것.

5분여간 ‘무명심’에 대해 설명한 월주 스님은 대웅전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승복 차림 여배우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가운데 부분의 머리부터 잘라내기 시작했다.

바리캉이 스쳐갈 때마다 번뇌의 상징인 무명초(無明草·불가에서 머리카락을 일컫는 용어)가 후드득 후드득 앞에 놓인 흰 종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이날 삭발식은 월주 스님과 이 작품을 쓴 독실한 불교신자인 이만희 작가와의 오랜 인연으로 이루어졌다. 월주 스님은 “이 작가는 내 유발상좌(有髮上佐·출가를 하지 않은 속가의 제자)”라며 “이번에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뜻) 사상을 바탕으로 한 연극을 한다고 해서 삭발식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극단 ‘천지인’의 ‘그것은…’은 1990년 초연 당시 삼성문예상, 백상예술대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등을 휩쓸었던 히트작. 원작은 속세에서의 정신적 충격 때문에 불교에 귀의한 남자주인공인 도법 스님이 치열한 번뇌 끝에 구도에 이른다는 내용. 이번엔 등장인물이 모두 ‘비구’(남자 스님)에서 ‘비구니’(여승)로 성(性)을 바꿨다. TV로 더 친숙한 중견 배우 연운경 씨가 ‘비구니 버전’의 주인공 도법 스님을 맡았고 상대 역인 탄성 스님 역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말 못하는 어머니 역으

로 눈길을 모았던 이영란 씨가 맡아 다른 비구니 역의 후배들과 함께 머리를 깎았다.

연 씨는 “처음엔 삭발식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월주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서도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영란 씨는 “앞으로 머리가 있어야 하는 역할 제안이 들어오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삭발이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다”며 “하지만 요즘 연극에서 여배우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시어머니나 며느리 아니면 일탈을 꿈꾸는 자유부인 정도인데, 이 작품은 여성의 입을 통해 존재의 본질에 대해 다룬 좋은 작품인 만큼 머리카락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미추를 가르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

초연에 이어 이번 작품의 연출을 맡은 강영걸 씨는 “불교적 재료를 갖고 만들었지만 결국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이라며 “이번 ‘비구니 버전’을 통해 좀 더 섬세하고 여성적인 시각을 가지려 했다”고 말했다. 공연은 9월 15일∼11월 12일. 제일화재 세실극장. 02-3443-1010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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