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때 언론인 249명 납북-36명 피살”

  • 입력 2006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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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중에 언론인 249명이 북으로 끌려갔고, 36명이 피살됐습니다. 전쟁 중 이렇게 많은 언론인이 죽거나 납치돼 돌아오지 못한 채 생을 마쳐야 했던 비극은 세계 어느 나라의 언론 역사에서도 일찍이 없었습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6·25전쟁 당시 납북된 민간인 8만3000여 명 가운데 언론인과 종교인의 납북 현황을 조사한 ‘6·25전쟁 납북’(기파랑)을 펴냈다.

정 교수는 1950년대 공보처가 발행한 ‘서울특별시 피해자 명부’, 1956년 대한적십자사가 희생자 가족의 등록을 받아 작성한 ‘실향사민 등록자 명부’ 등 각종 자료를 조사해 언론인과 종교인들의 이름을 찾아냈다. 조사 결과 언론인은 6·25전쟁 중 285명(피살 36명, 납북 249명), 종교인은 371명(피살 176명, 납북 195명)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정 교수는 “북한군은 서울을 점령하자마자 방송과 신문사 등 언론기관을 장악했고 ‘조선인민보’와 ‘해방일보’ 등을 발행하는 등 언론을 선전도구로 이용했다”며 “이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와 가장 민감한 관계에 있던 언론인과 종교인들의 피해가 엄청났다”고 말했다.

피살된 언론인 중에는 고영환(동아일보 논설위원)과 이종린(대한민보 기자) 등이 포함됐다. 납북 언론인 중에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백관수, 한성일보 사장 안재홍, 언론인 겸 소설가였던 이광수, 방송인 겸 시인 김억, 방송인 겸 수필가 김진섭 등이 있었다.

특히 동아일보는 가장 많은 피해를 보았다. 16명이 피랍됐고, 1명이 살해당했다. 편집국장 장인갑, 일장기 말소사건에 관련됐던 운동부(체육부) 기자 이길용, 사진부장 백운선 등과 여러 명의 기자 또는 사원들이 피랍됐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던 정인보는 서울 낙원동에 있는 한양병원에 피신 중이던 7월 31일 납북됐다. 후퇴하던 인민군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를 끌고 갔으며, 그는 11월경 북한군이 도주할 때에 묘향산 근처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는 “2002년 3월 6·25전쟁 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미일 회장이 보여주는 피랍자 명단에서 많은 언론인의 이름을 발견하고 놀라움과 전율을 느껴 연구를 시작했다”며 “납북자 문제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밝혀야 할 과거사이며, 한국 언론사에도 반드시 기록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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