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가 아프리카 미술에 빠진 까닭은…

  • 입력 2006년 7월 12일 03시 05분


코멘트
아프리카 미술품 마니아인 정해광 교수. 갤러리 ‘아프리카로’를 차려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아프리카 미술품 마니아인 정해광 교수. 갤러리 ‘아프리카로’를 차려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아프리카 바문족의 잔. 사진 제공 정해광 씨
아프리카 바문족의 잔. 사진 제공 정해광 씨
《2006 독일 월드컵의 한국과 토고전. 이을용 선수가 쓰러지자 토고 선수가 망설임 없이 다가와 다리를 마사지해 줬다. 치열한 승부를 가려야 하는 그라운드에서 상대의 고통을 함께하는 아프리카 선수의 순박함에 한국 팬들은 갈채를 보냈다. 한양대 철학과 정해광 연구교수는 이런 아프리카의 순수에 매료돼 18년간 현지를 돌아다니며 조각 회화를 모아온 수집가다.》

아프리카 오지라고 불리는 중서부를 비롯해 35개국을 두루 다녔다. 토고에도 두 차례 가봤다.

“스페인 유학 시절 벼룩시장에서 아프리카 미술품에 매료된 뒤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현지에 다녀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아프리카를 선택한 게 아니라 아프리카 미술이 나를 선택한 듯합니다.”

그는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에서 ‘실학과 계몽주의의 비교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가 아프리카에 빠진 이유는 ‘휴머니티’에 대한 ‘목격’이다. 아무것도 없는 듯한 아프리카 오지에서 생생한 휴머니티를 봤기 때문이다.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비좁은 버스를 30시간 타고 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려고 엉덩이를 살짝 비트는 그들에게서 인간의 내음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번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 상갤러리에서 여는 소장 작품전 ‘아프리카 미술-인간을 묻다’의 부제 ‘리턴 투 네이처(Return to Nature)’도 인간 본성의 회복이라는 의미에서 붙였다. 아프리카 미술을 원시적 하위 문화로 치부할 게 아니라 그 정체성과 의미를 주목함으로써 아프리카의 휴머니티를 이해하자는 제안이다.

“동양철학의 개념을 빌리면 아프리카 미술은 대동(大同)사상, 요순시대의 태평(太平)과 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겉으로만 알던 미개의 대륙 이미지는 오해입니다. 우리에게 이제 학문이나 개념으로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프리카에서는 생활 속에서 발견된다면 오히려 우리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번 전시에서 정 교수는 직접 수집한 450여 점 중 150여 점을 선보인다. 아프리카 조각은 인간의 형상을 한 작품이 많다. 아프리카인은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거대한 성전이 아니라 인간의 심성에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시작 중 카메룬 바문족(族)의 잔은 진화의 역사를 새긴 작품이다. 13cm밖에 안 되는 작은 잔의 겉면에 10억 년 전의 선충, 5억 년 전의 곤충, 2억 년 전의 파충류를 새겨 놓았다. 잔 자체가 생명의 기원을 탐색하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코트디부아르 세누포족이나 콩고민주공화국 잔데족의 조각 작품도 인간을 새의 형상으로 표현해 종족의 기원을 이야기하려 한다.

팡족의 종자함은 자궁의 상징. 여성은 이 함에 먹을 것을 넣고 축제에 나가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내민다. 남성이 먹을 것을 집으면 두 사람 사이에 생명 탄생의 작업이 시작된다. 이 밖에 가봉 암베테족, 부르키나파소 보보족, 가나 야샨티족, 말리 도곤족 등에게 수집한 조각들도 대부분 인간을 이야기한다. 전시에서는 콩고민주공화국의 킨샤샤예술대 무칼라이 교수의 ‘두 여인’ 등 회화 15점도 선보인다.

그가 아프리카 미술품 수집에 들인 비용은 가늠하기 어렵다. 한 해 5000만 원을 쓴 적도 있다. 결혼해서도 아이를 두지 않은 그는 “아프리카 여행 가이드 등 과외 수입도 있다”며 “아프리카 어느 곳에 있을 조각들의 손짓이 어른거리는 통에 그냥 있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시는 15일∼8월 20일. 02-730-0030

허 엽 기자 he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