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2025 희망, 지구에 가난은 없다…‘빈곤의 종말’

  • 입력 2006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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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종말/제프리 D 삭스 지음·김현구 옮김/548쪽·2만8000원·21세기북스

《미국의 전 재무장관 폴 오닐은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를 언급하면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성과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미국이 돈을 얼마나 낭비했을까. 2002년 미국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1인당 3달러를 제공했다. 여기서 미국인 컨설턴트를 위한 비용과 행정비용 등을 빼면 현지에 도달한 원조금액은 1인당 0.06달러에 불과하다. 성과가 없는 건 당연하다. 2004년 미국의 군비 지출액은 4500억 달러였지만 대외원조금액은 150억 달러였다.》

빈곤이 가난한 자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볼멘 목소리로 말할지도 모른다. “왜 도와줘야 하는데?”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 ‘과연 돕지 않아도 괜찮을까?’라고 반문한다.

지구상에서 극단적 빈곤 상태에 처한 11억 명을 돕기 위해 필요한 돈은 생각보다 적다. 저자의 계산에 따르면 선진국 국민총생산의 0.7%, 즉 소득 10달러당 0.07달러만 할애하면 2025년에 극단적 빈곤을 끝낼 수 있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저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경제특별자문관으로 활동했고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유엔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입안과 실천을 맡았다. 1986∼1990년 볼리비아의 대통령 자문역을 지낼 때 인플레이션을 4만 %에서 10%대로 끌어내린 전력으로도 유명하다.

빌 게이츠가 지난해 하반기 워런 버핏과 만났을 때 필독서로 추천한 이 책에서 저자는 폴란드의 경제개혁, 중국의 재도약, 인도의 시장개혁 등 사례를 들어 가며 극단적 빈곤을 끝내고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 계산법을 제시한다.

구조조정의 시대인 지난 20년간 부국은 빈국에 “빈곤은 여러분 자신의 잘못이다. 우리처럼 되라”고 요구해 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은 빈국에 긴축, 사유화, 자유화, 통치구조 개선을 일괄 처방해 왔지만 빈국의 산악형 지리, 불충분한 강수량, 말라리아,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에는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저자는 훌륭한 개발경제학은 임상경제학(clinical economics)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훌륭한 임상의처럼 개발경제학은 경제가 복잡한 시스템임을 현장에서 살피고 감별 진단 기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경제를 설명한 책이지만 어렵지 않다. 숫자와 낯선 개념에 머리가 아프다면 그저 사회통념을 점검해 보는 일반 교양서로 읽어도 좋다.

아프리카 빈곤 탈출의 최대 걸림돌은 부패와 취약한 통치구조라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그러나 저자는 높은 소득이 통치구조의 개선을 낳는다고 지적한다. 소득이 높아지면 문맹은 줄어들고 정부의 정직성을 감시할 역량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자유시장 옹호론자는 성장이 지체되는 모든 경우를 자유시장의 부재로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헤리티지재단 등이 만든 경제자유지수와 성장의 상관관계를 봐도 경제자유지수 값은 낮지만 경제성장이 높은 나라(중국)가 있는 반면 경제자유지수 값은 훌륭해도 경제성장이 낮은 국가(스위스, 우루과이)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시장을 무시한 공산주의자들의 시도가 비참한 실패로 끝났듯, 시장의 힘에만 의지해 경제를 관리하려는 시도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

그렇다고 저자가 자유시장의 확대를 동반한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되레 저자는 1990년 이래 세계화 덕분에 극단적 빈민들이 인도에서 2억 명, 중국에서 3억 명이 줄었다고 설명한다. 1992∼2002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1인당 외국인 직접투자 누적액을 분석해 보면 외국인 직접투자 유입 속도가 빠를수록 경제성장도 빨랐다.

저자가 옹호하는 세계화는 ‘계몽주의적 세계화’다. 민주주의와 다자주의의 세계화, 과학과 기술의 세계화, 더 나아가 인간적 욕구를 충족하도록 설계된 전 지구적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실제 성공의 사례를 열거해 가며 세계의 치유를 역설하는 저자의 설명을 읽다 보면 세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믿고 싶어진다.

원제 ‘The End of Poverty’(2005년).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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