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8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 입력 2006년 6월 3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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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인 한명회(韓明澮·1415∼1487)의 호(號)이자 그가 서울 한강변에 앉아 풍류를 즐기던 정자 이름. 멀리 북한산에 늘어서 있는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와 중국 사신을 위한 접대 자리로 이용되던 명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狎鷗亭洞)이다.

조선시대 말까지 경기 광주군 언주면 압구정리였다가 1963년 성동구로 편입되면서 압구정동으로 바뀐 뒤 1975년 신설된 강남구로 편입됐다.

압구정동이 세간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은 이 무렵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부터다. 그 중심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가 있었다.

1978년 6월 30일 ‘현대아파트 분양특혜 사건’이 발생했다. 현대아파트 일부가 차관, 국회의원 등 고위급 인사에게 분양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동아일보는 이날 ‘민간아파트 특혜 분양-고급 공무원 등 220명 색출’이라는 제목의 사회면 톱기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사정당국은 진상조사 결과 프리미엄 등을 노린 전매 목적으로 아파트를 구입한 경우 경고와 함께 건설업계에 반납하거나 이미 아파트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을 때는 그 차익금을 세금 등으로 환수조치토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건설업체들의 사원용 아파트를 짓는다는 이름 아래 미리 청탁해 온 고급 공무원 등에게 임의로 특혜를 줘 청약질서를 어지럽게 하고 수백만 원 이상의 이득을 얻은 경우도 있음을 밝혀냈다.…”

특히 여당은 물론 야당 국회의원까지 특혜분양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그 충격이 더했다.

당시 야당 관계자는 “자식이 많다 보면 후레자식도 있기 마련”이라고 얼버무렸다.

여기에 아파트 건축 허가를 내주는 건설부(현 건설교통부) 관료들까지 연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대아파트는 ‘정관계 비리의 온상’이었음이 드러났다.

이후 압구정동은 ‘아파트 투기’의 상징이 된다. 일반 국민은 강남의 투자 가치에 눈을 떴고 압구정동은 당대 권력층이 모이는 특별한 공간이 됐다.

이제는 강남 지역 대부분에 평당 3000만 원이 넘는 ‘고가 주택’이 자리 잡고 있다. 도곡동 타워팰리스나 삼성동 아이파크처럼 수십억 원대를 호가하는 초고층 아파트도 들어섰다.

타워팰리스는 1999년 분양 당시 강남권 고소득층 거주자를 대상으로 선별적인 분양 마케팅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현대아파트는 ‘부(富)의 상징’이자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한적한 한강변의 명소에서 삭막한 아파트촌으로 변해 버린 압구정동을 한명회가 다시 본다면 긴 한숨을 내쉴지도 모르겠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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