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적인 삶’ 그게 뭔데?…‘화려한 백수들’ 소설서 날다

  • 입력 2006년 6월 30일 02시 59분


코멘트
《“고정적인 직장을 갖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박주영 씨 ‘백수생활백서’ 중》

‘백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편의 장편소설이 나란히 나왔다. 두 작품 모두 굵직한 문학상을 거머쥔 ‘화려한 백수들’이다.

박주영(35) 씨의 ‘백수생활백서’(민음사)는 올해 오늘의작가상 공동 수상작이다. 이상운(47) 씨의 ‘내 머릿속의 개들’(문학동네)은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다.

백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풍경을 차지해 온, 현대의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설 속 백수의 등장은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럽다. 두 작가는 각자 백수를 내세워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성 체제에 거센 저항의 목소리를 낸다.

○“비생산적인 것이 소중하다”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신예 박주영 씨의 첫 장편인 ‘백수생활백서’는 ‘스스로 백수가 돼 버린 여자’ 이야기다. “멀쩡하게 대학을 나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심지어 아버지 식당 일조차 돕지 않고 이러고 지내는 것을 사람들은 한심해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하나도 한심하지 않다. …고정적인 직장을 갖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기꺼이 아버지에게 빌붙어 살겠다는 것이다. 여자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고, 그러면서 책에 대한 성찰의 깊이를 더해 가는 과정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전달된다.

노동에 대한 자의식이 없는 주인공은 이상의 소설 ‘날개’의 남자를 떠올리게 한다. 아내한테 빌붙어서 지내는 1930년대 남자에게 식민지시대 지식인의 고뇌가 스며 있던 것처럼, ‘아버지한테 빌붙어서 그냥저냥 하루를 보내는’ 2000년대 여자에게는 문학이 외면받는 세상에 대한 저항감이 스며 있다. 여자가 일하기 싫어하는 이유가 ‘책 읽을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이기 때문. 책이 공들여 읽혀지지 않는 시대에 여자는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나는 가볍고 의미 없고 비생산적이다”라는 여자의 선언은 그래서 의미 있다.

○“저효율 불량기계들의 항변”

등단 10년째인 이상운 씨의 ‘내 머릿속의 개들’은 풍자적이다. 실직하고 반지하방에서 뒹굴던 백수 주인공에게 ‘가정을 구조조정해 달라’는 대학 동창의 제안이 왔다. ‘서로의 빈곤과 고독을 채우기 위해 고도의 생산성이 보장된 탁월한 합병(결혼)을 했으나’ 엄청나게 비만해진 아내에게 염증을 느낀다며 아내를 ‘꼬셔’ 달라는 것이다.

이 백수의 구조조정 플랜은 돈과 외모에 경도된 인간의 욕망을 비꼬는 것이다. 할 일 없는 남자와 뚱뚱한 여자는 물론 현대 사회의 패배자를 상징한다. ‘가정 구조조정’으로 남녀가 재배치돼 패배자들이 커플이 되는 장면에 대한 묘사는 유머러스하지만 우습다기보다 서글프다.

속도감 있는 대화와 빠른 장면 전환 때문에 소설은 잘 읽히지만 곳곳에서 날카로운 대사가 튀어나와 긴장감을 던져 준다.

“저는 지독하게 한심한 최악의 불량기계였습니다. 생산성이 형편없는 존재였고 효율성이 엉망인 존재였습니다”라는 고백은 거꾸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최고 가치로 두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천박한지를 드러낸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