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한국미술 반세기를 돌아보다…‘한국미술 100년’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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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아이 업은 소녀’(1953년). 사진 제공 덕수궁미술관
박수근 ‘아이 업은 소녀’(1953년). 사진 제공 덕수궁미술관
긴 계단을 오르면 현관 앞에 둥그런 봉분 형태의 검은색 설치작품이 놓여 있다. 작품 앞쪽에 설치된 사각형 비디오 화면에서는 커다란 눈이 관람객들을 바라본다. 1992년 ‘카셀 도큐멘타’에 출품된 육근병의 ‘풍경을 위한 눈’을 재현한 작품이다.

현관을 거쳐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격동의 현대사를 압축한 듯한 신학철의 대형 회화 ‘한국 현대사-갑돌이와 갑순이’(2002년)가 맞아 준다. 이어 중앙홀에 이르면 이불의 ‘히드라-모뉴먼트’(1998년)가 위압적으로 버티고 서 있다. 손대면 터질 듯, 잔뜩 바람을 불어넣은 높이 6m의 비닐 조형물로, 온갖 장신구를 활용해 엽기적으로 치장한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9월 10일까지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한국 미술 100년’ 제2부 전시의 초입에서 만나는 이들 작품은 ‘우리는 누구인가’를 탐색하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이 전시를 포괄하는 주제인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8∼10월 열린 ‘한국 미술 100년’ 제1부에 이은 후속 전시. 1957년부터 현재까지 회화, 조각, 사진, 설치 등 미술 전 부문에서 현대미술 반세기의 발자취를 300여 점의 작품과 200여 점의 자료를 통해 돌아보는 자리다. 작고 화가 김환기, 박생광의 그림부터 젊은 여성 작가 이불, 이윰의 설치작품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보여 준다.

전시에서는 네 가지 미술사적 혹은 사회적 사건이 시대를 구분하는 기점으로 등장한다. ‘현대미술작가초대전’(1957∼66년)이라는 주제 아래 전후 모더니즘 미술운동의 양상을 살펴보고, ‘청년작가연합전’(1967∼79년)에서는 실험미술과 단색조미술을 짚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1980∼87년)에서는 민중미술 중심으로 현실에 대응한 미술을 조명하고, ‘서울올림픽’(1988년∼현재)을 계기로는 미술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살펴보았다.

두 번의 전시로 현대미술 100년을 조명한다는 야심찬 목표는 얼마나 이뤄졌을까. 미술평론가 박영택 씨는 “1, 2부로 나눠 100년의 궤적을 당대 작품을 통해 짚어본 것은 다른 곳에서 하기 어려운 전시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시대 구분에서 기존 시각을 답습해 새로운 해석을 보여 주지 못한 점과 전시 작품이 과연 그 시대와 작가의 대표작이냐는 문제에선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1950, 60년대 구상미술이 산업화나 근대화를 거쳐 오면서 대중이 추구했던 미술 정서를 반영하고 있음에도 지나치게 축소돼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국립미술관의 전시임에도 과거 정부의 탄압을 받았던 민중미술은 주요하게 조명된 반면, 국가 주도 미술사업으로 한국 화단을 주도했던 ‘국전’은 기록물 중심으로 간략하게 언급돼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평면적으로 나열돼 지루한 느낌을 주는 디스플레이상의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전시를 총지휘한 김윤수 관장은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 전시를 하다 보니 아쉽게도 빠진 작가가 많았다”며 “내년에 구상 계열이나 여성 작가 등에 대한 전시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이 전시의 미덕이자 한계는 교과서 같은 전시라는 점. 따라서 교양을 넓히고 싶은 미술애호가라면 과천까지 가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마음 먹고 둘러볼 만하다. 전시기간 중 작품설명회가 매주 금 토 일 오후 1시, 3시에 열린다. 02-2188-600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함께 보면 좋은 전시 2題…우리 정서로 그려낸 여성과 아이의 역사

커다란 화면 안에 폭발하는 화산을 배경으로 거의 벌거벗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오른쪽에는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는 절망의 지옥도가, 반대편에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기운찬 군중이 그려져 있다.

광복 후의 어지러운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쾌대의 ‘군상’(1948년)은 한국 역사화의 수작으로 꼽힌다. 7월 30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근대의 꿈: 아이들의 초상’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이 전시는 190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화 드로잉 등 130점을 모은 기획전. 오지호 박수근 김기창 배운성 장우성 한묵 장욱진 최영림 등 근대 화단의 대표 작가들이 망라돼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문학에서도 그렇지만 근대 미술에서도 ‘아버지의 부재’가 두드러진 현상이란 점. 아버지를 포함한 가족 구성원 모두가 등장하는 작품보다 엄마와 아이만을 다룬 그림이 많다. 02-2022-0612

미술을 통해 우리 역사의 단면을 짚어 보는 전시가 또 있다. 이화여대 박물관의 2층 전시장에서 7월 15일까지 열리는 ‘여성·일·미술’전. 이화여대 개교 120주년 특별기획전이다. 조선시대 김홍도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매해파행도(어물을 팔러 가는 포구의 여인들)’부터 김기창의 ‘풍속도’와 박수근의 ‘행녀’ 등 여성과 노동의 관계를 작품으로 살펴본다. ‘정신 나간’ 여자들의 이미지를 연출 사진으로 담아 낸 박영숙의 ‘미친년 프로젝트’를 비롯해 가부장제 아래서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02-3277-3152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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