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미석]컬렉터의 힘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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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 보세요.’

두 달 전 문을 연 목인(木人)박물관에 가면 일부 소장품에 이처럼 유쾌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본부인 옆에 샐쭉하게 선 작은 각시, ‘천당 극락 찾지 말고 마음 고쳐 적선하자’고 당당히 푯말을 써 붙인 거지…. 이곳의 나무 조각상들을 보노라면 그 친숙함과 정겨움에 슬며시 웃음이 배어 나온다. 뿔이 하나 달린 일각수와 물고기 몸에 사람의 얼굴을 한 ‘아미타 어’ 앞에 서면, 우리 선인들의 상상력이 서양의 판타지 작가를 앞서는 게 아닌가 싶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거창하고 요란한 공간은 아니다. 서울 인사동의 쌈지길 맞은편 골목 안에 푸른 넝쿨로 뒤덮인 오래된 2층집이 있는데 여기가 박물관이다. 현관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아담한 2층 전시실에서 알록달록 고운 오방색과 소박한 조형미가 어우러진 ‘목인’들이 반긴다. 하늘나라로 가는 마지막 길을 아름답게 장식했던 상여 장식용 조각, 신당과 사찰에서 사용된 나무 조각상들이다.

“죽음과 관련된 물건이라고 꺼리는 사람도 있던데, 그래서 더욱 남아 있는 삶을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거죠. 또 ‘귀신 들린 물건’이라고도 하는데 귀신이란 다름 아닌, 내 안에 있는 남을 미워하는 마음이 아닌가요.”

박물관을 세운 김의광 관장의 말이다. 월급쟁이로 출발해 녹차회사 최고경영자(CEO)까지 올랐던 그는 30년 전 우연한 계기로 소소한 민예품을 모으다 1980년대 후반부터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상여 인형을 수집하게 됐다. 시골에 노인들만 남게 되면서 상여 멜 사람도 없어져 쓸모없이 버려진 목인들이 하나둘씩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던 것. 처음엔 ‘나만의 즐거움’으로 시작한 일이 3000여 점으로 늘어나면서 ‘이 목인들이 더는 내 것이 아니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박물관을 연 뒤 그는 여러 사람이 함께 보고 좋아하는 것이 또 하나의 희열임을 새록새록 깨닫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컬렉터들이 신분 노출을 매우 꺼린다. 컬렉션을 돈 많은 사람들의 특이한 재테크나 별난 여가 활동으로 여기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큐레이터에겐 큰 전시 때마다 개인 컬렉터를 찾아가 작품 좀 빌려 달라고 읍소하는 것이 일이다. 국내 경매에선 소장자에 대한 기록을 안 밝히지만, 외국의 크리스티나 소더비에서는 경매도록에 작품의 소장 출처를 표기한다. 좋은 안목을 가진 수집가의 소장 여부는 작품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다.

개인 컬렉터들을 광장으로 이끌고 다양한 컬렉션 문화가 꽃피려면 컬렉션을 단순한 투기수단이나 돈 자랑의 도구로 보는 사회적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 모두가 의식 있는 컬렉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싸잡아서 삐딱하게 보는 것도 문제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간송 전형필 같은 뛰어난 컬렉터들은 우리 문화에 빛을 더해 준 공로자들이다. 컬렉션이 풍성해질수록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기초체력도 튼튼해지고 언젠가 많은 사람이 감상할 기회도 늘어난다. 진정한 컬렉터의 힘은 궁극적으로 ‘공유’하는 데서 나오는 것임을 컬렉터들도, 대중도 깨달아야 한다.

어떤 컬렉터가 될 것인가, 그리고 컬렉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 해답의 단서를 21일부터 2주간 보물창고를 열어젖히는 간송미술관이나 번잡한 도심의 작은 쉼터 격인 목인박물관 같은 곳에서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고미석 문화부 차장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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