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죽여주는 맛 살아가는 멋… ‘소풍’

  • 입력 2006년 5월 2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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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창비
사진 제공 창비
◇ 소풍/성석제 지음/300쪽·9800원·창비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회식’이라는 세례 절차를 거쳐 월급쟁이 세계에 첫발을 들여놓은 성석제(사진) 씨. 회식 주최자가 미식가이고 음식 얘기를 워낙 잘해서 여러 번 술자리에 쫓아다녔단다. 음식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신기했고, 뭣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병통 때문이다.

그랬던 그는 20년 뒤 맛깔 나는 냉면을 먹으러 경기 의정부까지(그의 집은 경기 군포시다) 갈 정도로 미식가가 됐고, 이야기 쓰는 게 직업인 소설가가 됐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 이야기에다 작가의 인생살이를 양념처럼 버무린 산문집 ‘소풍’을 냈다.

그때 회식 주최자가 소개해 준 어란(魚卵) 이야기 한 토막. 숭어의 배를 갈라 알을 꺼낸다. 알집이 터지지 않도록 살살 꺼내야 한다. 소금물에 담갔다가 간장을 희석한 물에 씻는다. 헛간에 걸어놓고 매일 두어 차례씩 참기름으로 칠한다. 수십 일이 지나 알집이 굳어 꾸들꾸들해지면 어란 완성. 맛은 어떠냐 하면, 앞니 사이에 끼우고 조근조근 깨물면 입 안 가득 향이 퍼지며 구수하니 단맛이 나는 게 어란이란다. 먹을거리가 워낙 유구한 얘깃거리인 데다, 성 씨 특유의 능청맞은 입담 따라 읽는 재미도 여간 아니다.

너비아니부터 묵밥까지 한 끼 식사로 적당한 음식부터 성 씨가 특히 좋아하는 국수류, 김치나 홍시 같은 곁다리 음식, 국화차 소주 등 마실거리에 이르기까지 책 한 권에 별의별 먹을거리가 담겼다.

여기에다 만드는 사람, 만드는 과정, 먹는 장소, 먹은 동안 일어난 일, 함께 먹은 사람들에 얽힌 사연이 더해져 한 편 한 편이 짧은 소설 같다. 누구나 먹었을 평범한 버거도 성 씨를 거치면 ‘히케(HICKE) 버거’ 같은 재미난 얘기가 된다. 메뉴판에 쓰여 있어 신기한 건 줄 알고 주문해선, 맛있다고 무릎 치며 먹었는데 알고 봤더니 ‘치킨(CHICKEN) 버거’의 앞뒤 철자가 지워진 것이었다나.

라면 얘기에 작가의 개인사를 겹쳐 놓은 산문 하나. ‘읍내에서 십리 길 가까운 시골에 사는 소년에게는 도시적이다 못해 이국적인 느낌까지 불러일으킨’ 라면의 세계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입문했다.

개교 90년 됐다는 고교에 진학해선 학교만큼이나 만만찮은 전통을 자랑하는 분식집을 다니면서 역사 오랜 라면 맛에 푹 빠졌다. 그리고 군대에서 주방장의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고 얻어먹은 라면의 특별한 맛. 요즘 라면 맛이 옛날 같지 않아 분유깡통이랑 양은냄비랑 사놓고 끓여보기도 했지만 그 맛은 돌아오지 않더란다. 생각해 보니 라면을 먹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먹고 싶어 한 것이라는 작가의 고백이 잔잔하게 마음을 울린다.

베트남 쌀국수, 미국의 연어 스테이크 같은 ‘세련된 요즘 음식’을 맛본 체험기도 이채롭다. 그런데 제목은 웬 ‘소풍’? “소풍 가서 자연스럽게 나무 그늘에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고(食) 샘물을 마시는(飮)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낌(感)이 움직이는(動) 것을 공유하고 싶어서”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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