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우리네 삶,왜 이다지 맵고 짰던가…‘한국인의 자서전’

  • 입력 2006년 5월 1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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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자서전/김열규 지음/280쪽·1만2000원·웅진지식하우스

옛적 아기를 갖지 못한 우리 여인네들은 ‘부암을 했다’. 부암(付巖)은 바위에 붙인다, 바위에 부합시킨다는 뜻이다. 바위에 무얼 붙인다는 것일까?

부녀자들은 커다란 바위의 표면에 모가 나지 않은 둥근 돌(몽돌)을 비벼댔다. 자근자근, 우직우직 갈아 댔다. 드디어 바위 결이 움푹 팬다. 거기다 몽돌을 꽂듯이, 박아 넣듯이, 쑤셔 민다. 구멍과 돌은 서로 꼭 들어맞는다.

“합궁(合宮)이다! 찹쌀 궁합 뺨치는 바위 궁합, 돌 궁합이다. 이래서 한때 한국인의 사내 이름 가운데 ‘바위’가 제법 많았다. ‘돌쇠’라는 이름은 또 어떻고!”

한데 얼마나 비벼 대야 하는 걸까? 몇 날 며칠로는 어림도 없다. 몇 달, 아니 몇 해를 비비고 갈고 또 비비고 해야 한다. 후벼 파듯이, 깎아내듯이, 도려내듯이 하면서 맞비벼야 한다. 말이 쉽지, 바위를 돌로 문질러서 구멍이 나게 하기까지 그 정성, 그 노력, 그 세월은 오죽했을꼬!

기자(祈子)라고 일컬어 온 ‘아기 빌이’는 아기 낳기를 비는 일이다. 달에 빌고 샘에 빌고 산신령과 서낭당에 빌고 또 빌었다. 바위에도 빌었다. 한국의 어머니들은 ‘아기 빌이’ 하다가 손바닥 다 닳고 무릎뼈에 금이 갔다. 그 쓰라림, 그 동통(疼痛), 그 아림은 이 땅에서 살다 간 여성들이 겪은 또 다른 산고(産苦)였다.

태아도 아픔을 겪으면서 태어났다.

산모가 아등바등 죽을 고생을 하는데도 아기가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옛사람들은 온 집안의 구멍이란 구멍, 문이란 문은 모조리 열어젖혔다. 문과 구멍은 여성의 상징이다. 아기가 나올 문이다. 그래서 문과 아궁이, 심지어 솥뚜껑, 요강 덮개도 열었다. ‘유사 법칙의 주술’이다.

그런데도 아기가 나오지 않으면 산모를 상복으로 감쌌다. 난산으로 초주검인 산모를 상복으로 똘똘 말다니? 바야흐로 새로운 생명이 축복을 받으며 태어날 찰나에 산모에게 죽음의 옷을 입히다니?

이건 ‘역(逆)하는 주술’이다. ‘반대 법칙의 주술’이다. 상복을 입음으로써 죽음의 반대이자 그 거꾸로인 생명의 탄생을 촉진하게 되리라고 생각한 것일까? 무서운 이야기다. 소름 돋는 사연이다. 탄생은 그리도 엄숙하다.

“생명은 그만큼 무서운 것, 늠렬(凜烈)한 것! 옷깃 여미고 또 여미고, 간수하고 다듬어야 하는 것! 해서 짜디짠 데다 맵디매운 게 인간 목숨이란 것을 상복 입은 산모는 온몸으로, 온 몸짓으로 소리 없이 절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반만 년 우리 신화와 전설에서 길어 올린 한국인의 집단 자서전이다. 우리 겨레의 집단 무의식과 민족 심상의 정수를 가늠하게 하는 신화적 기호에 대한 해독서다. 상징들로 꿰고 또 엮어진 옛이야기들은 우리네 삶과 사랑, 죽음을 관통하며 때로는 아픔으로 비트적대고 때로는 비참으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끝내는 눈물로 범벅이 된다.

한국인의 질박한 삶과 정신세계를 찾아 5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저자. 그의 이야기 그물은 넓고도 깊다. 그만의 이야기 속에는 혹독하고 애절한, 순박하고 해학이 넘치는 한국인의 숨결이 스며 있다.

‘이고 메고 지고 업고’ 가는 우리 인생길 자체가 굽이굽이 고생길이라고 했던가. 선조들은 삶 자체가 고생바가지라고 일러왔다. ‘고생문이 훤하다’고 했다. 전통적인 한국인들에게 삶이란 짐바리, 짐 보따리였다. 삶을 지는 것, 그게 살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만큼 모질게 독하게 세상을 살아갔다. 그토록 짜게 맵게 살아들 갔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인생도, 세상도 소금 단지 같았던 것은 아닐까? 거기에 살림 담고 목숨 담아서 우리들 생명 부지해 온 것은 아닐까?

“우리 한국인의 인생은 김칫독 같은 것./우리 목숨들!/소금 뿌려지고 고추 흩뿌려져서/거꾸로 생기 되살아나는 김장 배추와 무들!”

짠지 인생을 땀범벅으로 살아온 한국인들. 짜디짠 짠지들의 땀방울은 눈물로 얼룩지고 피로 물들여졌다. 거기엔 우리 민족의 집단적 상흔과 그 아문 딱지들이 있다.

목숨 줄! 목숨 부지! 목숨 붙인다! 이거야말로 한국인의 존재론의 핵심이었다. 우리 ‘영혼의 동아줄’이었다.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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