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잊지못한 한국사랑… 마포삼열 목사 67년만에 유해이장

  • 입력 2006년 5월 5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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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보수 신앙을 고수하며 청교도적 삶을 산 마포삼열 목사는 한국 장로교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진 제공 장신대
정통 보수 신앙을 고수하며 청교도적 삶을 산 마포삼열 목사는 한국 장로교 신학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진 제공 장신대
한국 개신교 초창기 선교에 청춘을 불살랐던 마포삼열(미국명 새뮤얼 모펫·1864∼1939) 목사의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이 67년 만에 실현된다.

마포삼열 목사는 26세 때인 1890년 1월 한국에 와 평양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하는 등 선교사 활동을 펼쳤던 인물. 1901년 장로회신학대의 전신인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세워 초대 교장을 지냈으며 1918년부터 10년간 평양 숭실대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19년에는 대한예수교 장로회 8대 총회장으로 일하면서 미국 장로교에 일제의 만행을 알렸고, 신사참배 거부를 주도하다 1936년 일제의 암살 위협에 미국으로 쫓겨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올 날만 고대하며 살았다. 그러나 마포삼열 목사는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39년 “한국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졌다.

캘리포니아 남부 먼로비아 시의 한 주택 차고를 개조한 집에서 말년을 불우하게 보내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그의 행적과 묘지가 2004년 국내 교계에 널리 알려지자 2005년 예장 통합 총회는 이장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난달 20일 마포삼열 목사와 부인 루시아 여사의 유해가 묻혀 있는 샌타바버라 시 근교 카핀테리아 공동묘지에서 이장 예배가 올려졌다. 이날 예배에 참석한 차남 하워드 모펫(한국명 마포화열·89) 박사는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일본의 압제로 고통당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했다.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 그곳에 묻히겠다는 게 아버지의 소원이었다”며 부친의 유언을 전했다고 한다.

지난달 22일 한국으로 운구돼온 마포삼열 목사 부부의 유해는 9일 오전 9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장신대 이상조기념도서관 앞에서 열리는 이 학교 개교 105주년 기념식에서 이장 감사예배와 함께 안장될 예정이다. 아울러 이날 홍익대 박석원 교수가 제작한 마포삼열 목사의 반신상 제막식도 함께 거행된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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