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계 아카데미상 ‘브누아 드…’ 최고 여자무용수 김주원 씨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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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여자무용수’ 김주원 씨는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시상식이 열린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 공연지인 대구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곧장 서울역으로 향했다. 청바지 차림으로 트렁크 두 개를 끌고 기차에 오른 그는 “몸을 풀기 위해 클래스에 빠질 수 없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세계 최고 여자무용수’ 김주원 씨는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시상식이 열린 모스크바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 공연지인 대구로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곧장 서울역으로 향했다. 청바지 차림으로 트렁크 두 개를 끌고 기차에 오른 그는 “몸을 풀기 위해 클래스에 빠질 수 없다”고 했다. 박영대 기자
《26일 밤 10시 50분 러시아 모스크바 출발, 27일 오전 11시 20분 인천공항 도착. 공항을 나서자마자 서울역으로 출발해 대구행 KTX에 몸을 실은 것이 오후 1시 30분…. 26일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의 무용제전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고 여자무용수 상을 수상한 국립발레단 수석 발레리나 김주원(28) 씨. ▶본보 26일자 A2면 참조》

그러나 그는 귀국하자마자 영광을 누려볼 새도 없이 바로 대구의 연습실로 직행했다. 28, 29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국립발레단의 ‘돈키호테’ 공연 때문.

“몸을 풀어야 하기 때문에 오후에 열리는 클래스(연습)에 빠질 수 없다”는 그를 1시간 40분 동안 흔들리는 KTX 안에서 인터뷰했다.

우선,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시상식과 기념 공연을 잘 마쳤는지를 물었다.

“감정에 푹 빠져서 춤을 춘 뒤 만족스럽게 무대 인사를 했는데 반응이 이상했어요. 호응은 느껴졌지만 박수나 환호가 크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파트너인) 김현웅이랑 둘이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나중에 누가 ‘너무 아름다워서 넋이 나가 한숨만 내쉬느라 박수를 잊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번 심사위원에는 세계적인 안무가 롤랑 프티의 총애를 받았던 발레계 톱스타 도미니크 칼프니도 있었다. 리셉션에서 그는 칼프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당신 춤을 100번도 넘게 봤다고, 당신은 내 ‘드림(dream)’이라고. 그러자 칼프니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아니, 오늘은 네가 내 드림이야.”

그가 발레를 시작한 것은 부산 배정초등학교 5학년 때. 불과 3개월 만에 서울에서 열린 한국발레협회 주최 콩쿠르에서 동상을 탔고, 이듬해에는 김지영(현재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소속)과 공동 금상을 수상했다,

이후 중학 2학년 때 내한했던 러시아 무용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선화예중 3년을 다니다가 러시아 볼쇼이 아카데미로 유학했다. 그곳에서 그는 외로움과 싸우며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앞니 하나는 의치다. 러시아 유학 시절 새벽에 화장실에서 기절하면서 이가 부러지고 허벅지와 얼굴을 다쳐 지금도 희미한 상처가 남아있다.

“발레는 정말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남들과의 경쟁이었으면 오히려 싫증을 내고 이렇게 오래 못했을 것 같아요. 누군가 목표를 두고 경쟁을 하면 그 사람을 이겨버리면 끝이지만, 저와의 싸움은 끝이 없거든요.”

사실 그는 발레하기에 적합한 신체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의 발은 개구리 발처럼 온통 굳은살투성이다. 흔히 ‘고’라고 불리는, 발레리나들이 중요시하는 아치형 발등도 그는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 달에 토슈즈를 15개씩 갈아 치우는 연습벌레다.

해외 발레단에 진출할 생각은 없을까?

“이번 수상 후 가장 기뻤던 것은 러시아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왔고, 외국에 나갈 기회도 있었지만 계속 한국에 남아 발레를 했던 제 선택이 틀린 게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한 점이었어요. 발레하기에 한국 여건이 외국에 비해 좋진 않죠. 하지만 해남 땅끝 마을에서 무료 해설 발레도 보여 주고, 소도시 구민회관 무대에도 선 것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이번 수상으로 세계 정상의 발레리나로 ‘공인’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트렁크 두 개를 홀로 끌며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어야 한다.

“사실 발레단 월급으로는 여전히 생활이 적자예요. 그래서 부모님한테 죄송하죠. 제가 신는 토슈즈는 한 켤레에 10만 원이지만 발레단에서 토슈즈 구입비용으로 지원해주는 것은 2만5000원입니다. 토슈즈 값만 한 달에 150만 원이 드는데 제 월급은 300만 원이 안 돼요.”

무대 생명이 짧은 발레리나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무대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무대여도 상관없어요. 떡 팔고, 생선 팔고 하는 시장이라 하더라도 춤을 출 수 있다면 모두 무대입니다. 단 몇 명이 되더라도 제 춤을 본 관객들이 감동을 받는다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대구=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테크닉보다 예술성 더 평가 한국발레 위상 보여준 쾌거”▼

2006년 ‘브누아 드 라 당스’에는 영광을 나눠가진 또 한 사람의 한국인 무용수가 있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에 위촉된 최태지(47·사진) 정동극장장이다.

27일 김주원 씨와 함께 귀국한 최 씨는 “10년 가까이 국립발레단을 지켜온 주원 씨의 수상은 한국 발레의 높아진 위상을 보여 주는 쾌거”라면서 “심사위원들도 한국의 발레가 짧은 시간에 급성장한 데 대해서 놀라더라”고 말했다.

지난 1년간 전 세계에서 공연된 전막 발레의 비디오를 본 뒤 심사하는 ‘브 누아 드 라 당스’에는 올해 여성 5명, 남성 6명, 5개 작품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콩쿠르는 무용수들의 테크닉을 주로 심사하지만, ‘브누아 드 라 당스’는 무용수의 연기력과 감정 표현 등 예술성을 평가합니다. 주원 씨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표현력 면에서 세계 최고의 평가를 받았어요.”

최 씨는 “유리 그리가로비치(전 볼쇼이 극장 예술감독) 심사위원장을 비롯한 심사위원 8명이 각 후보자의 출연작을 1막부터 끝까지 꼼꼼히 본 뒤 토론을 거쳐 수상자를 최종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내가 국립발레단장으로 있던 1998년 발레 ‘해적’으로 데뷔한 주원 씨는 타고난 몸매보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무용수”라고 평했다.

최 씨는 남자 최고무용수 후보에 올랐던 김현웅 씨에 대해 “테크닉도 좋고 몸매도 러시아 남자무용수보다 훨씬 낫다는 평을 들었지만, 전막 발레 연기경험이 2년밖에 되지 않아 훗날을 기약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안성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에 대해서도 “수상은 못했지만 갈라 공연에서 관객들의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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