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2년 조선YWCA 창립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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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의 가정에서는 주부 이하 안식구들은 과연 하는 일이 무엇이오니까…어른으로부터 아해까지 밥 먹는 시간이 일정하지 못한 결과 아침부터 밤중까지 밥상 차려 내다가 세월을 보내고 마는 것이 아니오니까…일정한 시간에 한가족이 함께 모여 밥을 먹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 총무 김필례는 1924년 1월 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무용(無用)한 수고를 덜자’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남녀 역차별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성과를 낸 이 나라의 여성운동은 이런 ‘하찮은’ 문제를 개선하는 데서 시작됐다. 일제강점기의 여성단체들은 애국계몽운동에 힘썼다. 조선YWCA도 그 앞장에 나섰다.

조선YWCA는 김필례 김활란 유각경의 주도로 1922년 4월 20일 창립됐다. 이날은 조선YWCA 2차 발기회가 열린 날이다.

3월에 1차, 5월에 3차 발기회가 열렸고 6월 종교 및 단체생활 훈련을 위한 하령회(夏令會)를 개최함으로써 본궤도에 올랐다. 대한YWCA는 세 여성 선각자가 그 기틀을 마련한 2차 발기회를 창립 시점으로 삼고 있다.

YWCA 여성운동은 각 시대의 사회상, 여성의 지위 및 관심사를 오롯이 드러낸다.

일제강점기에는 금주(禁酒)계몽, 공창(公娼)제도 폐지, 문맹퇴치, 물산장려 등 애국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 최용신은 바로 1930년대 조선YWCA 계몽운동의 화신(化身)이다.

광복 후엔 대한YWCA로 이름을 바꾸고 기술교육과 여성의 법적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해 애썼다.

1950년대 혼인신고, 1960년대 부정축재자·축첩(蓄妾) 공무원 축출, 1970년대 서울 청계피복지부 근로 여성을 위한 야학 ‘평화교실’ 운영 및 소비자 의식 제고, 1980년대 자원봉사, 1990년대 북한 어린이에게 분유 보내기 등을 활동 목표로 삼아 시대상을 반영해 왔다. 최근엔 생명사랑 공동체운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암매(暗昧)한 여성사회에 빛이 되고자 했던’ 조선YWCA가 스스로도 암매한 상황에 빠진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 말 집요한 내선일체(內鮮一體) 공작에 그만 무릎 꿇은 것이다. 두고두고 한스러운 일이다.

‘여성이여 앞으로!’를 외치며 ‘새로운 정신을 가지고 조선사회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여러 여자들에게 일층 원기를 주고 자각을 주기 위하여’ 2000여 회원과 함께 첫발을 내디딘 뒤 80여 년 동안 여성운동을 펼쳐 온 YWCA. 이제 9만 회원과 이 나라 여성들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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