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독서, 소리로 읽는다

  • 입력 2006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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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에서처럼, 텍스트는 독자가 읽어 주어야만 비로소 그 의미를 갖는다. 책 이전에 독자가 있었다.

최근 출간된 ‘읽는다는 것의 역사’(로제 샤르티에 외 지음·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책 이전부터 존재했던 읽는 행위의 역사화를 시도한 책이다. 이 책이 되짚어본 읽기의 역사와 미래의 읽기 방식에 대한 전망은 인터넷 블로그와 전자책 등으로 세계 그 어느 곳보다 새로운 방식의 읽기 문화가 앞질러가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차 독서혁명 ‘음독에서 묵독으로’=최초의 읽는 행위는 소리 내어 읽는 ‘음독(音讀)’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씌어진 문장이 완전해지려면 소리 내어 읽는 행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음독은 당시 문장의 특색 때문에도 불가피했다.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기록된 초기의 책은 낱말과 낱말 사이에 간격이나 구두점 없이 계속 쓰는 연속기법으로 기록됐다. 독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문자의 뜻을 더듬어 가며 읽어 봐야 텍스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의 해석은 소리와 몸짓에 의존해야 했다. 당시의 독서는 사회적 모임의 기회였으며 혼자 책을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두루마리형 책은 2세기 이후 값싼 책자형 책으로 바뀌었으며 책자형이 두루마리를 완전히 대체한 12세기 무렵 유럽 수도원의 필경사들 사이에서는 소리를 내지 않고 읽는 ‘묵독(默讀)’이 시작됐다. 공동생활에서 소리를 낮춰 책을 읽는 것이 불가피했던 것. 책자형 책은 참조와 재독을 쉽게 하고 명상적 독서를 가능하게 했다.

묵독이 시작되자 낱말 사이의 간격, 문단의 변화를 표시할 필요성이 생겨 문장부호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독서가 혼자 하는 일이 되면서 성적 체험을 기록한 책도 속속 등장했다.

▽2차 독서혁명 ‘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묵독은 주로 제한된 책을 정독하는 집중형 독서였다. 15세기 파리 소르본대학의 10년간의 도서대출부 기록을 보면 우등생들이 읽은 책 목록이 성서,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언집과 주석,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과 그 주석에 국한돼 있다. 제한된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암송하는 독서법이 일반적이었던 것.

그러나 15세기 중반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고 인쇄술이 점차 산업화하면서 서서히 제2의 독서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책 생산이 이전의 3, 4배로 증가한 18세기 중반에 이르면 ‘정독’하는 집중형 독서가 ‘다독’하는 분산형 독서로 바뀐다.

이전에 책을 읽지 않던 여성들이 대거 독자로 유입됐고 독서조합과 대출도서관 등 독서기관이 급격히 증가했다.

▽3차 독서혁명 ‘분산형에서 검색형으로’=분산형 독서는 필독 목록인 ‘정전(正典)’의 권위 없이 내가 읽고 싶은 것만 골라 읽는 방식. 이 같은 읽기 방법은 20세기 후반부터 현재 진행되는 인터넷 혁명을 통해 검색형 독서로 극대화된다.

검색형 독서에서 독자(reader)는 이제 사용자(user)다. 필요한 텍스트만 고를 수 있을 뿐 아니라 언제라도 텍스트를 수정하고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 스크린에 비치는 텍스트를 스크롤바를 이용해 위로 밀어 올리면서 읽는 방식은 어찌 보면 초기의 읽기 행위인 두루마리 책 읽기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소리를 의식한 텍스트, 구어체의 글쓰기, 문자가 배제해 오던 음성과 표정을 글자에 담는 이모티콘 등도 신음독시대의 도래를 예고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문자는 인쇄기술의 발명에 따라 활자로, 이어 컴퓨터의 등장으로 전자(電字)로 바뀌었으며 전자텍스트가 더욱 발전되면 성자(聲字)로 바뀔 것이라는 논의가 있다”며 “음성적 세계의 회복을 통해 새로운 음독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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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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