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밤하늘의 작은 별’

  • 입력 2006년 3월 27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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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지도자 중에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이탈리아의 성 프란체스코(1181∼1228)다. 그는 ‘선택의 자유’를 처음 인정한 사람이다. 중세에는 교회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평소 기독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고 설교했다. 암흑시대에 민중에게 한 줄기 구원의 빛을 선사한 것이다. 이런 인본주의적 교회개혁운동은 르네상스 탄생에 정신적 배경이 됐다. 세속화된 현대사회에서 종교지도자의 역할은 더욱 커져만 간다.

▷24일 공식 서임식을 한 정진석 추기경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인도하는 밤하늘의 작은 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추기경으로서의 포부다. ‘작은 별’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듯이 정 추기경은 겸허한 분이다. 그는 “주변에서 저에게 ‘김수환 추기경이 해 온 역할을 해 달라’고 주문하시는데 그분의 종교적 카리스마는 제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렵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김 추기경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몸을 낮추는 모습이다.

▷정 추기경은 이전까지 교회 밖의 일에 대해 말을 아껴 왔다. 하지만 추기경이 된 이후엔 국가지도자에 대한 ‘주문’을 적극 내놓고 있다. 첫 기자회견에서 사회통합을 강조했던 그는 이번 서임식에 즈음해선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무겁게 말했다. 또 ‘대한민국의 역사는 실패한 역사’라는 자학적(自虐的) 역사관을 의식한 듯 “국력 신장으로 한국에서 두 명의 추기경이 나올 수 있었다”며 한국의 경제발전을 높게 평가했다.

▷정치 경제 지도자는 국민의 물질적 행복을 위해, 종교 지도자는 정신적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도자관(觀)이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친 사람을 위해 ‘작은 별’이 되겠다는 그의 다짐은 해놓은 것도 없이 큰소리만 치는 정치인들에 비해 소박해서 마음에 더 와 닿는다. 그는 “서울의 하늘엔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리더십을 상실한 정치인들에게 이보다 뼈아픈 은유는 없을 것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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